올 주총 자사주 처리두고 주주대결 늘 듯

2011년 소각의무 없앤 상법개정 부작용

日 10년간 지배구조개선, 증시 140%↑

성장률 더 높은 韓, 10년간 증시 30%↑

총선 겨냥한 주가부양책 미봉책 그칠듯

기대 접은 국내 투자자금 美·비트코인行

칭기스칸의 후계자인 몽골제국 2대 대칸(大汗) 오고타이(窩闊台)가 즉위 직후 명재상(名宰相) 야율초재(耶律楚材)에 묻는다.

“대제국을 개혁하려고 한다. 좋은 방법을 말해보라”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못합니다. 새로운 제도로 백성을 번거롭게 하기보다는 기존의 불합리한 것을 제거하십시오"

반대로 보이는 얘기도 있다.

춘추시대 말기 진효공(秦孝公) 때다. 인재를 구한다는 효공의 포고(求賢令)에 따라 위(魏)나라에서 온 상앙(商鞅)의 개혁법안(變法) 시행여부를 두고 설전이 벌어진다. 원래 진나라의 관료들은 반대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법을 바꾸지 않고 다스립니다. 관리는 익숙하고 인민도 편안해 합니다” -감룡(甘龍)

“지금보다 이익이 백 배가 더 나는게 아니라면 함부로 법을 고치지 말아야 합니다” -두지(杜摯)

상앙이 반박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법에 통제 당합니다”

변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주민상호감시체제 같은 새로 만든 제도보다 노예제 폐지 등 기존의 구습을 없앤 데서 이후 더 큰 효율이 발휘됐다. 변법 이후 진나라에서는 노비출신이나 평민이라도 실력만 있으면 전쟁에서 공을 세워 출세를 할 수 있게 됐다. 진나라 군대는 전국 최강이 되고 시황제(始皇帝) 때에는 중국을 통일한다. 사실 야율초재도 몽골의 중국 통치를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그가 해로운 일 제거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 때 신중해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고 봐야한다.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사주 소각을 둘러싼 논란이 늘어날 듯 하다. 소각을 꺼리는 지배주주(경영진)와 당장 모두 소각하라는 일반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등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어서다. 거슬러 올라가면 13년전 이뤄진 상법 개정 때문이다.

2011년 4월 상법이 개정되면서 소각이나 합병 등 특정한 경우 외에는 금지됐던 자기주식 취득이 광범위하게 허용된다. 달리 말하면 2011년 3월까지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원칙적으로 반드시 소각해야 했다. 당시 개정된 상법은 주주총회가 갖던 배당 결정권도 이사회로 넘겼다.

이밖에도 개정안은 다양한 무의결권 주식발행을 허용하고, 대주주의 소수주주에 대한 주식 강제매수 제도도 허용했다.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도 보수액의 최대 6배(사내이사)와 3배(사외이사)로 제한하고, 이사회가 의결(2/3)만하면 사업기회유용이나 자기거래도 가능하도록 했다. 당시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주체는 야당이자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이다. 법안은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최근 정부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하려다 기업들의 반발에 방침을 철회했다. 반발 명분은 △경영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사유재산 침해 소지가 있으며 △경영권 보호 수단이 약화된다 등이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금융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대신 상장법인이 인적분할을 할 때 자사주 신규 배정을 금지하고,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는 구체적인 활용 계획에 공시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기업 입장에서 경영활동 제약에 해당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50년간 상법에 존재해왔다. 되돌린다고 사유재산 침해나 경영권 보호 약화 논리를 펼칠 수 있을까?

지난 1월 24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증권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소개한 ‘기업밸류업프로그램’ 주요 내용은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공시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다. 기업의 수용여부를 반영해 강제가 아닌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정해진다.

‘기업밸류업프로그램’은 일본의 사례를 따랐다. 하지만 내용을 살피면 ‘모방’ 보다 ‘겉시늉’에 가깝다.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자본비율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위해 ’저PBR 기업 공시의무를 강화한 것은 2023년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증시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개혁을 추진한 것은 2014년부터다.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기업지배구조 개혁 방안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 향상, PBR 중심의 투자정책, 투자자 소통 강화를 제시했다. 공적연금(GPIF)과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ESG요소 반영도 이때부터 이뤄졌다. 2015년 TSE는 지배구조 공시도 의무화했고 2021년에는 그 수준을 더 높인다. 경영진(이사회)과 주주간 소통 결과도 공시하도록 할 정도다.

일본은 또 상장 대기업(프라임시장)은 경영을 감시하는 독립 사외이사 비율을 이사회 1/3 이상이 되도록 하고, 이들 가운데 이사회 의장을 임명하도록 했다.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니케이400 지수에 편입되지 못해 공적연금과 중앙은행의 주식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본이 10년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개선을 강제해왔다면, 우리나라는 선거를 앞두고 주가만 좀 끌어올려 달라는 당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보다 못한데 더 나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2014년 1만6147로 시작한 일본 증시(니케이225)는 현재 3만8754로 140% 올랐다.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규모(GDP) 3위에 오른 독일 증시(DAC30)는 이 기간 그 절반(70%)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상승률 독일의 절반도 안되는 고작 30%(2013→2644)다. 16일 현재 니케이225는 연초대비 15% 이상 급등했지만 코스피는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지난 해 경제성장률은 일본이 1.9%로 1.4%인 우리나라를 앞질렀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최근 2개 분기 연속 역성장이다. 인구가 2/3 수준인 독일보다도 경제규모가 작아졌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4분기 모두 0.6%씩 성장했다. 올해는 연간으로도 일본을 다시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이 우리만 못한 일본이 증시는 훨씬 뜨거운 셈이다. 이쯤 되면 우리 자본시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저PBR주’ 급등세에도 국내 기관과 개인은 되레 주식을 팔고 있다. PBR이 조금 높아져도 미래가치를 반영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은 주요국 최저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추가 상승여력을 낮다고 보는 셈이다. 외국인이 사고 있다지만 국내 투자자와는 입장이 다르다. 신흥시장 투자에서 중국 비중을 낮추면서 자산 재분배가 필요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원화강세가 나타나면 환차익을 노릴 수도 있다. 반면 국내 자금은 미국 등 해외주식 매수세가 올들어 계속 급증세다. 미국의 현물ETF(상장지수펀드) 승인에 반감기 기대까지 겹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거래대금도 크게 늘어났다.

다시 야율초재와 상앙의 얘기로 돌아가자. 2011년 상법 개정, 과연 해로운 일을 제거한 것일까?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이 법을 만든 것일까? 일본의 지배구조개선과 우리의 상법 개정 전을 따져보자.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니케이225는 14% 하락했지만 코스피는 95% 상승했다.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미국(S&P500)의 25.8%는 물론 독일의 37%도 크게 웃돈다. 물론 지배구조 외에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만, 적어도 해로움을 제거하고 지혜롭게 법을 고쳤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정부의 기업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한 시장 기대가 그리 크지는 않아 보인다. 현명한 다수의 국내 투자자들은 이를 다 꿰뚫어 본 듯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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