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재섭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지정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보완을 시사하면서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이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제도보완 방안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채택 가능한 대안은 자산규모를 현행보다 2배 늘려 10조원 이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3월 이후 대기업집단의 분류기준을 현행 자산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2배 증액할 것을 건의하는 등 지속적으로 기준완화를 요구해왔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기업집단은 현행 65개에서 37개로 줄어들게 된다.

4ㆍ13 총선에서 제3당으로 부상한 ‘국민의당’도 앞서 선거 공약으로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기업의 자산 규모만을 대상으로 규제를 가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자산이 늘어나면 상호출자 금지, 금융·보험회사 의결권 제한 등 각종 규제에 직면하는데, 비상장사라도 예외가 없다. 이러한 제도가 벤처 중견기업들이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만큼 사실상의 제도 폐지를 주장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수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지배적인 만큼 제도 폐지는 불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자산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산 기준과 관련해선 현행 기준의 2배인 10조원이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규제대상 대기업집단 수를 줄여야 한다는 원칙만 세웠을 뿐, 아직 구체적인 지정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기 공정위 기업집단과 과장은 “26일 박 대통령 발언이 나온 뒤 내부적으로 대기업집단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규모 얼마 이상으로 하느냐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한 게 없고, 전문가 의견을 묻는 등 수렴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상향조정되면 자산 5조원이 넘어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셀트리온, 카카오 등이 지정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반면 네이버는 자산 산정기준에서 제외된 해외법인 자산이 빠져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것으로, 국내 계열사의 자산 총액 기준으로 정하는 대기업집단 지정제에 따라 현재로서는 대기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지정기준을 변경할 경우 현재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령과 행정규칙이 80여개를 모두 바꿔야 한다. 금융· 조세· 중소기업 등 여러 부처의 정책 기준까지 달라질 수 있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기업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 간 상호출자는 물론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 일감 몰아주기가 불가능하다. 대규모 내부 거래, 비상장사 중요 사항, 기업집단 현황 같은 경영상 주요 내용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산업자본의 금융사 지배 금지,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도 적용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