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대학원생 이모(31ㆍ여) 씨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회식이 있을 때면 종종 마음이 불편해진다. 회식 메뉴로 찌개같은 것을 고르게 되면 어김없이 엄습하는 그 불안함. “오늘도 남의 침을 한 숟가락은 먹고 오겠구나…” 요즘이야 앞접시 안 주는 식당을 찾기 드물지만, 그래도 꼭 무리 중 한 두명은 멀쩡한 앞접시 깨끗하게 비워두고 다같이 쓰는 찌개 냄비를 숟가락으로 휘휘 휘젓는다. 설혹 싫은 티라도 내게 되면 “유난스럽다”는 타박이 돌아와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뿐이다.
부족한 위생관념 탓인지, 강한 공동유대감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은 유독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식사 문화가 발달해 있다. 찌개 그릇을 함께 쓰는 것은 물론이고, 멀쩡한 소주잔을 사람 수 맞춰 받아놓고 굳이 한 잔만으로 돌려가며 술을 마신다. 불과 반 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공공장소에서 헛기침만 한 번 해도 따가울만큼 쏟아졌던 주변의 시선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보다 개인화된 문화를 갖고 있는 서구에서 보면 한국의 이런 ‘정겨운’ 공유 경제가 경악스러울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 번 소스를 찍어 먹은 크래커를 또 다시 찍어먹지 말라’고까지 주장하는 논문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한 번 입에 댄 것을 소스에 또 찍어먹으면 소스를 함께 쓰는 다른 사람의 입에 병균이 옮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유난스러운’ 연구를 한 곳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클램슨 대학의 연구팀이다. 연구팀은 ‘소스를 두 번 찍어먹는 것이 다른 사람의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한 번 깨물고 난 크래커와 입도 대지 않은 크래커를 물에 담가 박테리아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안 깨문 크래커를 담근 물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던 박테리아가 깨문 크래커를 담근 물에서는 1㎖당 1000마리도 넘게 나왔다. 크래커를 깨문 사람의 입 안에 있던 박테리아가 옮겨간 것이다.
연구팀은 또 물의 산성도를 PH4ㆍ5ㆍ6으로 달리해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산성도가 높은 물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박테리아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실험을 물 대신 살사ㆍ초코ㆍ치즈 소스 등의 음식에도 적용해 본 결과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팀의 폴 도슨 교수는 “사람의 입 안에는 수백에서 수천가지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살고, 그 대부분은 무해하다”면서도 “폐 페스트, 결핵,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냉방병, 사스 등은 타액을 통해 전염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해당 질병들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1분당 1000~3600개의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진다는 것이다. 세균이 담겨 있는 이 작은 물방울은 책상이나 문손잡이 등 일상 용품에 묻어, 우리의 눈ㆍ코ㆍ입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 도슨 교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