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한국이 또다시 ‘달러 인출기’로 바뀌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선진국 자금 뿐 아니라 신흥국 자본들도 속속 국내 금융시장에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만에 미국 금융정책의 방향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글로벌 ‘머니무브(money move)’의 한 가운데에 한국이 서 있는 모습이다. 외환보유고가 많아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외국인 자금이탈은 환율과 금리를 압박해 아직 부진한 국내경제에 상당한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제금융협회(IIF)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 3분기 신흥국에서 순유출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은 338억 달러(약 40조원)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4분기의 1194억달러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다. 또 신흥국에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이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2008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유독 눈에 띄는 건 한국이다. 3분기에 한국에서는 109억 달러(약 12조8000억원)가 빠져나가 7월 이후 자료가 없는 중국과 필리핀을 제외한 15개 신흥국 중 유출액이 가장 많았다. 중국의 유출규모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의 유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은 분명하다.
한국 금융시장은 개방 정도가 높아 외국인들이 자금을 빼내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그 동안 투자수익도 꽤 짭잘했기 때문이다.
4분기 들어서도 이같은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6일 발표한 11월중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을 보면 주식은 한 달여만에 다시 순매도로 돌아섰고, 채권은 9월 이후 외국인 비중이 다시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주식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접어든 유로권 자금이 유입됐지만, 영국, 중국, 중동 자금의 이탈이 계속됐고, 최대 세력인 미국의 순매수도 석 달래 최저치로 뚝 떨어졌다.
채권에서는 2대 보유국인 중국이 국내채권 투자를 시작한 이후 월간 단위로는 가장 큰 3320억원의 보유액을 줄였다. 2014년말 6조9840억원의 한국채권을 보유했던 말레이시아는 11월말 보유액이 3569억원으로 48.9% 급감했고, 3조380억원을 보유했던 프랑스는 1조3670억원으로 반토막이 더 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최대 위험요인은 취약신흥국의 위기가 확대되는 것”이라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달러 확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내다파는 행렬도 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15일(현지시간) 밝힌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미국채는 551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전월만 해도 174억 달러 순유입 된 것과 대조적이다. 기준 금리인상에 대비해 빚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가 172억 달러에 달했다. 이미 미국 국채 보유 1, 2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최근 보유액을 줄이고 있다. 9월말 중국의 보유액은 1조2500억 달러로 전월대비 32억 달러 줄었고, 같은 기간 일본도 279억 달러를 줄여 보유액을1조1500억 달러로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