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스타트업 창업단지 ‘실리콘앨리’ -뉴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기업 창업자의 ‘빌리어네어’ 등극 -실리콘앨리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 몰려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민상식ㆍ김현일 기자]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이 태어난 곳은 모두 같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부에 위치한 속칭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다. 2000년대 들어 진행된 IT산업 부흥의 중심부 역할을 하면서, ‘실리콘 밸리’란 단어는 혁신의 동의어가 됐다.
하지만 요즘 혁신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동네가 있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이른바 ‘실리콘앨리’(Silicon Alley)다. 실리콘앨리는 실리콘밸리와 뒷골목을 뜻하는 영어 앨리(Alley)의 합성어로, 미국 뉴욕 맨해튼 서남부 지역의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 창업 단지를 일컫는다.
1990년대 중반 뉴욕 경기가 침체를 겪자, 뉴 미디어와 인터넷 컨텐츠를 다루는 IT 업체들이 맨해튼의 빈 사무실에 입주하면서 실리콘앨리가 형성됐다.
IT 신기술을 내세운 실리콘밸리와 달리, 실리콘앨리는 기존 산업과의 결합을 통한 뉴 미디어나 핀테크, 애드테크(Ad-tech) 등이 산업의 중심이다. 뉴욕은 전 세계 금융ㆍ문화ㆍ예술ㆍ패션의 중심지로 다양한 산업군의 창업가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고커 미디어(Gawker Media)는 설립 10년 만에 유력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한, 실리콘앨리의 대표적인 뉴 미디어다.
고커미디어는 다양한 블로그들을 한 데 모아 서비스하는 ‘블로그 네트워크’다.
영국 명문인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자로 일한 닉 덴튼(Nick Denton)은 2002년 미국 뉴욕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고커를 설립했다.
고커는 남다른 시각의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가십 전문 웹블로그 ‘고커닷컴’(Gawker.com)과 스포츠 전문 블로그 ‘데드스핀’(Deadspin), 생활 전문 블로그 ‘라이프해커’(Lifehacker) 등 9개의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각 사이트마다 전문 블로거들을 채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키웠다. 고커닷컴의 보도는 국내 언론에서도 자주 인용 보도되고 있다. 덴튼의 자산은 1억달러(한화 약 1130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경제매체 비지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도 실리콘앨리에서 탄생한 뉴 미디어다.
비지니스 인사이더의 설립 당시의 제호는 ‘실리콘앨리 인사이더’(Silicon Alley Insider)였다. 당초 실리콘앨리 지역의 뉴스를 주로 다뤘다.
예일대를 나와 월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헨리 블로젯(Henry Blodget)은 2007년 블로그 기반 뉴스서비스인 실리콘앨리인사이더를 창업했다.
이후 2009년 비지니스 인사이더로 이름을 변경했다.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짧은 기간에 가장 성공한 온라인 경제매체로 평가받는다. 창업 전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헨리의 특유의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 덕분이었다. 헨리의 자산은 5000만달러로 평가되지만,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거(Axel Springer)에 인수되면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수된 이후에도 헨리는 최고경영자(CEO)와 편집장을 맡게 된다.
이처럼 엔지니어 중심의 실리콘밸리와 달리, 실리콘앨리의 창업자 중에는 각 분야에서 활동한 기업가들이 많다.
2013년 실리콘앨리의 첫 빌리어네어(자산 10억달러 이상)로 기록된 이미지 판매업체인 셔터스톡(Shutterstock) 창업자인 존 오링거(Jon Oringer)도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던 그는 2003년 뉴욕에서 셔터스톡을 창업한 뒤 회원들이 서로의 사진을 공유하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 돈을 벌었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억달러로 평가된다.
존 오링거가 빌리어네어에 오른 이후에도 실리콘앨리 출신의 젊은 ‘뉴 리치’(New Rich) 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사무실 공유 서비스를 들고 등장한 ‘위워크’(WeWork)의 아담 노이만(Adam Neumann)과 온라인 안경판매 회사인 ‘와비파커’(Warby Parker)의 데이브 길보아(Dave Gilboa) 역시 향후 빌리어네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50억달러였던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6개월 만에 100억달러로 급상승했다. 회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노이만의 자산도 수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 가격 거품을 뺀 안경을 판매하는 와비파커의 창업자 길보아 자산도 1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위워크와 와비파커는 모두 2010년 뉴욕 맨해튼에서 설립됐다.
실리콘밸리로만 몰리던 투자가들도 ‘돈 보따리’를 들고 앞다퉈 뉴욕 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 나서는 실정이다.
데이터서비스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뉴욕 스타트업 601곳이 52억6000만달러를 투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투자받은 총액을 넘어선 금액이다.
회비를 내면 상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방식의 스타트업 큅(Quip)은 최근까지 3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뉴욕 맨해튼 소호 지역에 사무실을 둔 큅은 3개월마다 회원들에게 전동칫솔모과 치약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업체다.
뉴욕에서 설립된 동물전문 미디어 도도(The Dodo)와 인근 해산물 요리 전문점을 안내하는 앱을 만든 펄(Pearl) 등도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수천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도도는 허핑턴포스트 공동창업자인 켄 레러(Ken Lerer)와 그의 딸 이지 레러(Izzie Lerer)가 지난해 공동 창업했다. 도도는 파급력이 큰 동물 관련 기사를 자주 보도해,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언론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면서 영향력을 높였다.
이처럼 실리콘앨리의 성장세가 빠르지만,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투자 유치 등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최고의 장소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는 지사 설립 등을 통해 외부로 확장하면서 지금도 발전 중이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의 페이스북을 비롯해 구글,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IT기업은 모두 뉴욕에 지사를 설립해, 실리콘앨리 스타트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해외 IT기업 역시 실리콘앨리를 주목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설립된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도 뉴욕에 지사를 두고, 실리콘앨리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스웨덴 출신 기업인 다니엘 엑(Daniel Ek)이 세운 스포티파이는 스트리밍 방식을 음악시장의 대세로 정착시킨 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