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판화전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 10월 21~11월 3일 세종문화회관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왔을 때였어요. 원불교 법당 한 가운데 대형 TV가 놓여져 있었죠. 교무가 들어오더니 오늘은 교황이 여의도 광장에서 강론하는 날이니 법회 강론을 그 어른 말씀으로 대신하겠다고 합니다. 놀랐어요. 종교가 이렇게 열린 태도를 가질 수도 있구나.”
판화가 이철수(61)는 30여년 전 겪었던 원불교에 대한 강렬한 경험을 이 같이 설명했다. 그는 원불교 신자였던 아내와 연애하던 당시 처음으로 이 종교를 접했다. 이유는 “아내 될 사람이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있으니, 그 세계를 알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교회 벽화를 그리는 등 “예수쟁이들과 어울려 놀 때”였다.
그는 서로 다른 종교를 끌어안는 관대함에서 원불교의 매력을 봤다. 그리고 그 당시 그런 말을 했던 교무(김보현 원불교 원로 교무)와 5년전 쯤 다시 만났다. 원불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경전 판화 제작 의뢰가 그에게 들어온 것. 그는 30여년 전의 감동을 되새기며 원불교 경전 ‘대종경’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여점을 추리고 추려내 판화로 만들었다.
이철수 작가의 대종경 판화전이 오는 21일부터 11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에서 열린다. 원불교 100주년기념성업회가 주최하는 전시로, 이철수 판화 200여점과 함께 대종경 초기 필사본과 영인본 8권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서울 전시가 끝나고 나면 대구, 광주, 익산, 부산, 대전까지 전국 순회전을 가질 예정이다.
이철수는 원불교를 알리겠다는 생각보다 낡은 경전을 현대화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데 더 가치를 뒀다. 그는 “서구적으로 가공된 불교적 지혜들이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때에, 원불교 대종경 역시 종교와 상관없이 함께 읽힐만한 교양서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이후 선불교에 천착해 작업해 왔던 작가가 원불교 경전에서 느낀 매력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순우리말로 돼 있어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지혜라는 점이 좋았다. 특히 고급지혜라는 이름으로 난삽한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는 것, 절이라던가 어느 특별한 장소에 들어가야만 참선을 할 수 있고 정신 치유를 할 수 있다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크게 와 닿았다.
그는 “대종경이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선불교는 무협지를 보는 것 같죠. 일반인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무공들의 대화처럼 아우라가 있고요. 반면 원불교 대종경의 언어는 가파르거나 자극적이지 않았어요. 푹 익은 고구마 같죠. 젓가락 한 쪽으로 묵을 들어올리는 기분이랄까요. 경전 속에는 싸움거리가 없었어요.”
쉬운 말로 씌여 있는 경전 문구를 이철수는 특유의 따뜻한 그림과 함께 더욱 쉬운 언어로 ‘재해석’했다. 이를 테면 ‘사나운 개가 그 동류에게 물려 죽게 된 지라…’라는 문구 아래에는 ‘싸우기 좋아하면 싸우다 죽는 법’이라는 해석을 붙이는 식이다. ‘앉아서는 하고 서서는 못하는 선이면 병든 선이라…’는 말씀에는 ‘참선 수행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는 말씀!’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말을 보탤 수 없이 원문 자체의 힘이 좋은 경구에는 사견을 뺐다.
이철수 작가가 특정한 종교를 빌어 이러한 대작 시리즈를 선보이게 된 건 ‘지향없는 분노표출 사회’에 치유가 될 만한 것을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었다.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해치는 사건 사고 뉴스가 너무 많아요.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저 사람은 행복하니 못마땅하다는 게 이유죠.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가 자기 주체를 못하고 사는 세상 같아요. 물질 개벽이 준비되지 않은 정신들에게 가하는 폐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저는 경전이 전하는 가르침에 대해 세상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었어요.”
그는 원불교를 보지 말고 원불교를 통해 제시되는 삶의 지혜를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에게 종교가 뭐냐 물으면 뭐든지 안 믿는다고 해요. 하지만 사실 다 믿죠. 모두 다 하나의 지혜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