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ㆍ장필수 기자] #. 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에 재학 중인 남모(24) 씨는 최근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남 씨는 석사 학위까지만 염두에 두고 있다. 박사 과정은 밟지 않을 예정이다. 남 씨는 “취업 시장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고, 적잖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치뤄 박사 학위를 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박사 공부가 지엽적인 내용을 파고드는 것이라, 취업 시장에서 선택의 폭이 늘기는커녕 외려 제한된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기술대 4학년생 김모(26) 씨도 “석사만 졸업해도 학사졸업생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남 씨의 말에 적극 동감했다.
최근 이공계생들 사이에서 석사 학위 취득 후 박사 과정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들이 국내 일류대를 졸업해 해외 명문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른바 ‘특 S급’ 인재만을 선호하며, 일류대가 아니라면 굳이 취업에 도움도 되지 않는 박사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급 과학기술인력 부족이 결국 창의적인 연구성과 산출 역량의 부족으로 이어져, 과학기술혁신 등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17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이공계 학ㆍ석사 인력은 지난해부터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러, 오는 2022년까지 초과 공급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학사는 12만6500명, 석사는 1만3000명 가량 초과된다.
반면 박사 인력은 1만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자, 전기, 기계 등을 전공한 공학박사의 경우 1만1400명,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는 800명 정도의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결과는 2012년 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원 대비 이공계박사 비율 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국내 연구원 대비 이공계박사 비율은 0.015로, 영국(0.034), 독일(0.031), 프랑스(0.026) 등 주요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인력 가운데 ‘고급’ 과학기술인력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고급 과학기술인력 부족이 결국 창의적인 연구성과 산출 역량의 부족으로 이어져, 과학기술혁신 등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상위권 대학 출신 박사만을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공계 박사들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현상이 10년가량 지속되면 학문 기반의 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 교수는 “학력 인플레라는 우려가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방에서도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며 이공계생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