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금속공예가인 유리지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의 타계 소식에 공예계는 큰 아쉬움을 표했다. 20일 빈소인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공예가들은 한 목소리로 “큰 별을 잃었다”며 비통해했다.
한국에 금속공예라는 장르가 낯설던 시절에 체계적인 공예기법과 조형론을 소개했던 유리지 교수가 지난 18일 급성백혈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68세. 서울대 응용미술과, 미국 템플대 타일러미술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금속공예가로 명징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서울대에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또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사비를 들여 치우공예미술관을 설립하고, 한국 금속공예의 연구및 전시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 공간은 현대공예를 다루는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서, 현대공예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적잖이 기여했다.
서양화가 유영국(1916∼2002) 화백의 딸이었던 유 교수는 생전에 “화가인 부친이 ‘삶을 풍요롭게 가꾸라’며 미술가의 길을 권유해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초창기 인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1980년대에는 간결하고 부피감있는 작품을 제작했다. 이어 90년대에는 작가의 맑은 감성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또 2002년에는 장례문화를 테마로 한 전시를 열며 “죽음도 아름다운 삶의 한 형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0년 6~7월에는 금속공예가로써 40년 활동을 결산하는 전시를 서울대미술관에서 갖기도 했다.
전용일 국민대 금속공예과 교수는 “유 교수님은 국내에서 금속공예가 후발이었던 상황에서 현대 금속공예의 전범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셨던 분이다. 교수로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지만, 무엇보다 작가로서 뚜렷한 작업세계를 보여주시며 큰 귀감이 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공예의 정체성과 조형적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작가이자, 작가로서의 선명한 존재감을 보여주셨기에 후학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남으실 것”이라고 했다.
고인은 여성미술가들에게 수여되는 석주미술상(16회)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문공부 장관상(제27회)과 추천작가상(제30회)을 받았다. 유족은 동생 유진 카이스트 교수와 유건 시상설계사무소장, 제부 김명희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등이 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1일 오전 9시, 장지는 여주 선영이다. 02-3410-6903.
yrlee@heraldcorp.com [사진 제공=서진수 교수(강남대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