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굽는 소리, 종이 구겨지는 소리, 밤의 풀벌레 소리, 까마귀 소리, 타자기 소리… 음악도 종종 소음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과연 소음이 음악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을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정규 5집 ‘슬로우 다이빙 테이블(Slow Diving Table)’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다. 오랫동안 밴드명처럼 작은 부피를 가진 어쿠스틱 사운드 중심의 음악을 선보여온 이들은 이번 앨범에선 일상의 숨겨진 소리들을 전면에 내세워 청자에게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밴드의 멤버 김민홍과 송은지를 서울 합정동 소속사(파스텔뮤직) 사무실에서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민홍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소음 속에서 살고 있는데,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이 많음을 일깨우고 싶었다”며 “이 같은 일상의 소음들이 청자의 귀에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앨범은 첫 곡 ‘꿈길’부터 부드러운 소음으로 청자를 맞는다. 악기를 대신 하는 것은 기타 앰프의 잡음으로 빚어낸 소리다. 타이틀곡 ‘순간’엔 김민홍이 인도 여행 중 녹음한 아람볼 해변(Arambol Beach)의 바다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배경에 깔려 편안함을 더한다. ‘해피 론리 데이’에선 지하철역 거리의 소리가 몽환적인 사운드와 어우러져 따뜻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다가다가’에선 베이스 앰프의 잡음이 리듬 악기를 대신하고, ‘U.F.O’에선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 등이 각종 소음들과 뒤섞여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악의 부피는 여전히 ‘소규모’이지만, 사색의 부피는 결코 작지 않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이번 앨범 작업을 제주도에서 진행했다. 김민홍과 함께 지난 2011년부터 ‘단편 숏컷’이란 이름으로 소음을 이용한 음악적 실험을 벌여온 강경덕 사운드 엔지니어가 제주도 곳곳을 돌며 ‘비 내리는 시내 새벽 도로 소리’, ‘해안 동굴의 물소리’ 등 온갖 소리들을 채집했다. 김민홍은 그 소리들을 다듬어 음악에 녹여냈다. 기타를 제외한 베이스와 드럼,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 소리는 김민홍의 가공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가공물보다 자연물에 가깝다.
김민홍은 “가장 많은 고민을 한 부분은 채집한 소리들로 청각을 공격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며 “전형적인 악기들의 소리 대신 원하는 사운드를 직접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도 컸다”고 설명했다.
송은지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재조명하는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 해주세요’ 제작을 주도한 바 있다. 송은지는 “클래지콰이의 호란과 이효리 등이 새롭게 합류하는 ‘이야기 해주세요’ 앨범이 8월께 발표된다”며 “이효리는 자작곡으로, 호란은 싱어송라이터 시와와 함께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이듬해에 결성 10주년을 맞는다.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민홍은 “서로가 서로를 음악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며 “서로에 대한 존경은 밴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송은지는 “함께 음악을 만들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울 때가 많다”며 “새로움은 서로를 음악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준다”고 덧붙였다. 결성 10주년을 기념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민홍은 “50주년이 되면 그때 고민해보겠다”고 웃어 보이며 “사이먼 앤 가펑클처럼 나이가 들어 힘이 부족해져도 여전히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밴드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마지막으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어두운 밤 고요함 속에서 편안한 소음을 즐겨주길 바란다”며 “새벽 2시에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들으면 가장 맛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