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생긴 뒤 60여년…진천 두타산 아래 초평호엔 또렷한 한반도 지형이…용머리 부분은 실제 용신제 지내는 곳

7세기 김유신 장군은 백제와 고구려를 잇달아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다. 신라의 변방이자 삼국의 국경선이 가까웠던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무술을 닦으며 자랐다.

그로부터 1300여년이 지난 21세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이 돼 세계평화와 통일을 이끌어 나간다. 역시 이웃 마을 음성군 원남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청운의 꿈을 키우며 자란 곳이다.

이 두 마을 반경 10㎞ 안팎 중간 지점 진천군 초평면 두타산과 그 아래의 물길이 예사롭지 않다. 해발 598m의 명산 두타산은 발아래 초평천 물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8년 한국과 미국이 힘을 합쳐 최초로 이 땅에 수문을 만드니, 거대한 저수지 ‘초평호’로 변했다. 그 후 1985년 저수지를 대대적으로 증설했다.

청룡 물길이 휘감은 ‘한반도’

그런데 시대적 사명이라도 암시하는 걸까. 저수지가 생기고 6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안에서 완벽한 한반도 지형이 발견됐다. 지난 60여년간 알려지지 않았다. 한반도만 생긴 게 아니다. 제주도는 물론, 다이아몬드 모양의 일본 홋카이도에서 시작한 일본 열도와 만주 벌판, 중국 대륙까지, 한반도 주변 땅이 한눈에 펼쳐진다. 물만 가뒀을 뿐인데, 오묘한 지형이 등장했다. 마치 수중 타임캡슐에서 막 꺼낸 듯한 유물이랄까.

이 저수지가 있는 마을 초평면 화산리 주민인 변상주 선생이 2년 전 처음으로 발견해 군청과 주변에 알리다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차에 기자의 유사한 글을 읽고 제보를 했다. 변 선생은 최대한 빨리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다. 변 선생은 현재 붕어마을 번영회장 직을 맡고 있다.

지난 8월 여름휴가 중 별도로 날짜를 빼 달려갔다. 변 선생은 꼭 만나봐야 할 주민이 있다고 했는데, 두타산 능선에서 우연히 그분과 마주쳤다. 팔순의 배한성 어르신이다. 어르신은 기자에게 10여년 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가족의 문제’가 아닌 ‘세계평화’ 문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큰 게 이뤄지면 작은 일들은 다 따라오게 돼 있다며, 시골 늙은이가 이런 말 하는 걸 이상하게만 생각하지 말라며 웃으신다.

어르신은 이 산꼭대기에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돌탑을 28개나 쌓았다며, 기자에게 보여줬다. 28개를 쌓은 이유는 동양에서 말하는 하늘의 별자리 ‘28숙(宿)’을 의미한다.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 돌탑이다.

그리고는 배낭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 보이며 ‘2013년 8월 19일’이라고 적은 한자와 한글을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읽어나갔다. 기자가 내려간 날이 21일이었으니, 이틀 전에 새로 적은 내용이었다. 모든 내용이 ‘세계평화’를 위한 글이었다. 불교ㆍ기독교ㆍ이슬람교 등 3대 종교에 유교까지 융합해 모든 종교와 유학을 통합하는 ‘법왕(法王)’을 내세워 세계평화를 염원하고 있었으며, 그 중심이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어르신은 산아래 호수의 한반도 지형을 가리키며 “이곳의 기를 받은 사람이 삼국통일을 했고, 세계평화의 수장이 됐듯이 저 한반도 지형은 우리에게 남북통일을 이루라는 암시”라고 했다. 그리고 그 통일을 이룰 ‘진인’이 있다며, 기자에게 그 이름까지 밝혔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일 수도 있지만 시골 산꼭대기 여행에서 만난 마을 원로의 이야기를 들으니 재밌기는 하다. 마치 도인처럼 느껴졌는데, 헤어진 후에 기자는 꼭 산신령을 만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이런 범상치 않은 일들을 마주치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고, 색다른 매력이 되곤 한다.

‘한반도 지형’은 여러 곳에서 이미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강원도 영월, 충북 괴산, 전남 해남 등 기자가 어렴풋이 아는 곳만도 10곳에 이른다. 하지만 진천 초평저수지의 한반도 지형은 완벽에 가까운 모양에 주변국까지 동서남북 정확하게 배치돼 있다는 게 가장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한반도 지형을 휘감아도는 물길이 영락없는 청룡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청룡 물길이다. 이 청룡이 한반도를 품에 안고 승천하는 모습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용머리 부분이 실제로 용신제를 지내는 곳이란다. 절묘하다.

연일 냉방 수요가 절정에 달할 만큼 무더웠던 8월, 기자는 변 선생과 25분간 산에 오르며 땀을 비 오듯 쏟아냈다. 여행도, 관광도 아닌 고행길이었다. 나중에 어느 지인은 “참, 돈 들여 제대로 사서 고생하는군”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를 수 있었던 힘은 ‘그래, 이것도 작은 신대륙 발견이다’ 하는 스스로의 위안과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천군은 장기적으로는 유람선을 띄우는 계획이 있다고 했다. 전망대에 올라 답사한 후 변 선생과 작은 토론을 했다. 기자는 유람선은 큰 의미가 없고, 정말 이 한반도 지형과 청룡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열기구 같은 장비를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을 주문했다. 열기구 타는 것만 해도 하나의 레저활동으로 멋진데, 여기에 청룡이 한반도를 품고 승천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여주면 정말 황홀할 것만 같다고 제안했다. 변 선생도 무릎을 탁 쳤다. 지금까지 관광지화해서 알리는 일만 해도 혼자서 뛰느라 바빴던 변 선생이 공중 관람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적어도 진천의 한반도는 공중에서 천천히 돌며 봐야 할 자원이다. 열기구로 40~50분간 한 바퀴 도는 여행이라면 대한민국에서도 희귀한 추억을 제공하는 명소가 될 것이다.

두타산 전망대 옆에는 3형제 바위가 있는데, 배 어르신은 ‘법왕봉’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바위 한쪽 절벽은 영락없는 사람 얼굴 모습이다. 이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연이 빚은 한국판 큰바위 얼굴’이라고 내뱉었다. 이래저래 신비한 동네다.

낚시터로 유명한 초평저수지는 이렇듯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이것도 ‘생거진천(生居鎭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진천=남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