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에서 다뤄야할 경제활성화 법안 44개 중 43개가 평균 225일이나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자본시장법, 중소기업창업지원법, 벤처기업육성특별법 등 15개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이견을 좁혀도 시원찮은 판에 정쟁에 밀려 국회통과는 하세월이다.

44개 법안 중 상임위에 상정된 법안은 29개로, 제출에서 상정까지 평균 92일이 걸렸다. 하지만 상정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상정된 후에도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상정된 지 가장 오래된 법안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으로 무려 479일째 ‘논의중’ 상태다. 서비스산업 연구개발(R&D) 활성화, 투자확대를 위한 자금 및 세제지원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지난해 7월 20일 제출돼 지난해 9월 12일과 20일 두 차례 논의된 이후 지금껏 잠자고 있다. 이 법안으로 인해 민영 의료기관(영리병원)이 생겨나 사실상 의료민영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일·가정 지원 양립법(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주 명단공표)은 446일, 근로기준법(임신 위험시기 여성의 근로시간 단축)은 441일, 주택법(분양가 상한제 신축운영)은 418일, 스마트워크촉진법은 412일째 논의중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9일 제출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251일만인 지난 6월 17일 상임위에 상정된 뒤 단 한 차례의 논의만 이뤄진 채 398일째 묵혀지고 있다.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7000억원 규모의 7성급 호텔 등을 포함해 총 2조원 규모의 투자로 4만7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법안이다.

손자회사의 외자유치를 위한 제휴나 지분투자, 합작투자를 가능토록 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은 대기업 특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야당 반대로 진전이 없다. 이 법이 통과되면 GS칼텍스,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은 외국과의 합작을 통해 2조3000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수 있다. 재계에서 학수고대하는 법안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통과됐고, 이제는 경기회복에 전념해야 할 상황인데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며 상임위마다 제대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법안들이 대부분이어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경제활성화 관련 44개 법안중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까지 올라 간 법안은 도시정비 사업시 종전 주택의 면적 범위에서 2주택을 허용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뿐이다. 여야가 경제활성화 및 민생살리기를 위해 마련한 법안 가운데 서로 겹치는 법안도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는 주택법 개정안 한 개 뿐이다.

홍길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