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윤희 기자]에쓰오일이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가 적자를 낸 것은 원유정제시설 상업가동 첫해인 1980년 이후 34만에 처음이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도 1977년 이후 37년만에 처음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주범은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해 재고마진 손실이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위기가 전세계 산업구조적인 ‘저(低) 마진’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SK에너지 김준 에너지전략본부장은 “국제유가가 반등한다고 해도, 새로운 공급물량이 늘어나 석유정제를 통해 얻는 마진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산업 불황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유사 최악의 실적.. “유가하락보다 ‘低마진’의 구조적 문제”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유수입국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석유제품 수출국이다. 석유정제능력으로는 세계 6위에 이른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휘발유와 경유 등으로 재가공한 후, 이를 중국과 인도 등에 수출해 이윤을 얻어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중국을 중심으로 자체 정제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수출시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이제 휘발유를 자체 생산해 충분히 쓰고, 남는 양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이미 2012년 하루1154만배럴의 정제시설을 갖춰 자국내 석유소비량인 1022만배럴을 뛰어넘었다. 중국은 2017년까지 130만배럴을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유4사들의 대중국 수출은 2011년 9191만배럴에서 2013년 7615만배럴로 급감했다.

중동과 인도도 수출을 위한 정제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해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일이지만 중국은 18일, 싱가포르는 12일, 인도는 약 4일로 훨씬 더 짧다. 운송소요일이 길수록 운임료가 올라가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셰일가스도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는 ‘혁명’이지만 우리나라 정유사들에게는 재앙에 가깝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문영석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최대에너지수입국인 미국이 이제는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하고 있다. 아시아시장 정제마진이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수출시장이 줄어들면서 갈 곳 잃은 우리나라 석유제품들은 싱가포르 중개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 중개시장의 덤핑판매량은 2011년 6078만7000배럴에서 2013년 7438만배럴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덤핑량이 더욱 증가해 11월까지 집계된 물량만 9023만배럴에 달한다. 직거래선을 찾지 못한 석유제품들이 이렇게 헐값에 팔리면서 정유사들이 손에 쥐는 이윤은 더욱 줄어드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배럴당 10.29달러에 달하던 정제마진은 지난해 4분기 6.23달러까지 떨어졌다. 아시아 정제마진이 최근 8달러선까지 급등했지만, “유가가 급격히 떨어지는데 반해 석유제품 가격 하락세가 상대적으로 더뎌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지난해 말 폭락한 국제유가는 이런 정유사들의 악화된 경영환경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전영섭 교수는 “정제마진 하락과 내수시장 경쟁 심화로 정유사들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데, 유가급락으로 인한 재고평가손실까지 떠안게 돼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경쟁력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