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불법체류자 자녀들 정부 지원 받는곳에선 외면 사설센터 전전하며 힘든 나날 제도·비용 얽혀 국적부여 논란 2만명 추정뿐 수 파악도 안돼
전 이제 6개월이 지난 아들, 주하가 있습니다. 기자이자 초보 아빠이죠. 우연일까요. 지영이(사진, 가명)는 제 아이와 똑같이, 이제 세상의 빛을 본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주하와 지영이는 모두 환한 미소를 지녔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게 만드는, 그런 미소입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지난 6개월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지영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습니다. 국적이 없습니다. 지영이를 돌봐줄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 대신 지영이를 안아 줄 국가도 없습니다.
지영이의 엄마는 중국교포입니다. 몰래 화장실에서 지영이를 낳고서 막 눈 뜬 지영이를 마트 앞에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 뒤로 6개월 동안 지영이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이주여성지원센터는 불법체류자의 자녀처럼 갈 곳 없는 무국적 아이들을 위해 최근 문을 열었습니다. 지영이는 이 센터의 첫 손님입니다.
처음 기자의 얼굴을 보자 방긋 웃습니다. 엉금엉금 기어옵니다. 아이를 안았습니다. 더 환하게 웃습니다. 까르르 소리도 지릅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요? 취재 차 아이를 내려놓으니 이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밤에도 밤새 안아달라 울었어요. 한번 안아주면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하네요.” 김은숙 이주여성지원센터 이사장이 안타까워합니다.
갑자기 지영이가 울음을 그치고 또다시 미소를 짓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또다른 어른을 봤습니다. 6개월이면 한창 낯을 가릴 시기. 지영이는 사람만 보면 누구에게나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안아달라는 몸부림입니다. 6개월 만에 터득한 지영이의 생존법일까요. 지영이의 미소에 코끝이 찡해집니다.
지영이 외에도 이곳엔 총 3명의 아동이 있습니다. 케냐 엄마를 둔 희망이, 태국 출신의 기쁨이. 불법체류자의 부모 아래 한국에서 태어난, 무국적의 아이들입니다. ▶관련기사 3면 이곳이 생기기 전까지 이 아이들 모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부모마저 아이를 버렸습니다. 고아원도 알아봤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시설은 한국 국적을 지닌 아동만 돌봐야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세금은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하니까요.
이제 6개월이 된 지영이는 이 센터에 오기 전까지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지영이를 위해 분유를 타 주고 이유식을 만들어 줄 어른은 없었습니다. 지영이는 지금도 분유를 싫어합니다.
이주여성지원센터 안을 살펴보니 너무나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아기용 수저도 없어 어른 수저를 씁니다. 김 이사장은 “경영이 힘들어도 정부 지원은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다른 고아원처럼 지영이와 같은 무국적의 아이는 돌볼 수 없기 때문이죠.
평생 유아시설에 머물 순 없습니다. 어린이집이라도 가야 할 텐데 이 역시 고민입니다. 불법체류자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캄보디아인 A씨는 “어렵게 돈을 마련해도 받아줄 어린이집을 찾기 어렵다”고 털어놨습니다. 정부지원금이 없으니 전액 사비로 마련해야합니다. 어렵사리 월급을 모아 돈을 마련해도 피부색이 달라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 설사 받아줘도 “계속 돈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1년치를 한꺼번에 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국 A씨는 방 안에 아이와 음식만 두고 문을 잠근 채 일을 나간다고 합니다. 혹시 아이가 문을 열지 몰라 밖에서 문을 잠급니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를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느냐는 반론이 거셉니다.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한국 국적을 주자는 의견도 있고, 불법체류자를 양성화할 수 있다는 반발도 나옵니다. 비용 문제, 아동인권, 외국인 범죄, 혈통주의 등 제도와 돈, 문화가 얽혀 쉽사리 해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자녀, 무국적의 아이들은 현재 몇명이나 있을까요? 그 수조차 모릅니다. 민간단체에선 2만명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외면하면서 점점 이 아이들은 음지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지만 존재를 알 수 없는 2만명의 아이들. 음지에서 자랄 이 아이들은 한국을 어떻게 기억할까요?머지 않은 미래에, 존재하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한국을 ‘증오’하는 2만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지영이와 제 아들 주하는 6개월 동안 참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6년 뒤엔, 60년 뒤엔 두 아이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아니, 지원센터를 떠나는 순간 이 사회는 지영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