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데...아는 게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비저너리]를 챙겨 봐주세요.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신념이 있는지...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푸른 셔츠에 짙은 남색 자켓을 걸친 레이쥔(雷軍·55) 샤오미(小米) 회장이 전기차 ‘SU7’의 창틀에 주먹을 갖다 대자 문이 열린다. 벨트를 매고 버튼을 누르자 차가 부드럽게 이동했다.
레이 회장은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항저우까지 약 170km 거리를 3시간 30분 동안 ‘SU7 프로’를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했다. 이 영상은 하루 동안 약 390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영상에서 레이 회장은 “SU7 판매량이 예상을 웃돌고 있다. 올해 계획한 생산 물량이 7만대에 불과해 아쉽다”고 말했다.
중국 전자제품업체 샤오미가 내놓은 전기차가 또 하나의 ‘대륙의 실수’가 될 지에 세상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1년 8월 16일, 베이징 798예술구 샤오미 스마트폰 신제품 발표회에서 검정색 목폴라에 청바지, 검은 운동화를 신고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레이쥔을 본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창업자를 흉내낸다며 ‘레이 잡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서 잡스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애플이 10년 동안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전기차를 그가 해냈다. ‘짝퉁 애플’, ‘중국의 레이 잡스’라는 소리를 들었던 레이쥔으로선 격세지감의 일이다.
2010년 ‘좁쌀’로 시작한 샤오미...이젠 글로벌 기업
레이쥔은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료 10명과 샤오미를 창업했다. 동료들과 창업을 앞두고 나눠 먹은 좁쌀죽(小米粥) 한그릇에서 이름을 따왔다. 레이 회장이 제안한 이름인데, ‘샤오(小)’는 불교에서 ‘한 알의 작은 곡식알이 높은 산보다 위대하다’는 가르침을 나타낸다고 한다. ‘미’(米)는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의 머리글자와 같다. 미1, 미2, 미3, 홍미, 미패드 등 샤오미 제품은 ‘미(Mi)’ 시리즈로 출시되고 있다.
가격은 저렴한데 성능은 좋아 ‘대륙의 실수’라는 별명을 가진 샤오미는 보조배터리, 물병, 가방부터 휴대폰, 청소기, 공기청정기, TV 등 안 만드는 게 없을 정도로 제품군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집 안을 살펴보면 어딘가에 샤오미 제품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샤오미는 다양한 하드웨어(제품)를 출시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회사에 더 가깝다.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통합해 자체 생태계를 이루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부터 안드로이드 기반 펌웨어인 ‘미유아이(MIUI)’를 개발해 자사 하드웨어에 도입했고 올해 2월에는 자체 운영체제(OS)인 하이버 OS까지 출시했다. 펌웨어는 장치나 시스템의 동작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이 잇따라 성공하며 창업 3년 만인 2013년 중국 시장 판매량에서 애플을 뛰어넘었다. 설립 8년 만에는 세계 4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도약했고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창업 13년인 올해는 전기차까지 출시해 ‘전기차-스마트폰-가전-소프트웨어’로 짜여진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써보고 피드백 좀 부탁해”…팬덤과 함께하는 ‘참여’ 마케팅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샤오미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레이 회장의 대표적인 명언이다. 트렌드와 시류가 발생하는 길목에서 시의적절한 상품과 마케팅을 펼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풍의 길목’은 회사 로고로 쓰인 ‘미(MI)’ 즉 모바일 인터넷이다.
샤오미는 자체 플랫폼인 ‘MIUI’를 스마트폰보다 먼저 개발해 실시간 소통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미펀(샤오미 팬)’이라는 강력한 팬덤이 탄생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제품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온라인 판매자를 자처했다.
2011년 8월 샤오미 스마트폰 출시를 발표한 후 정식 판매를 앞두고 2개월간 테스트판 스마트폰을약 1699위안(약 30만원)에 선보였다. 정식 출시 전 샤오미 스마트폰에 있는 문제점을 찾고 마케팅 방향 등을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샤오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레이쥔은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2개월 동안 스마트폰을 다시 디자인했다.
당시 레이쥔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테스트판을 만든 목적은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라며 “샤오미는 테스트판 사용자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시판용 스마트폰으로 교환해 드릴 것을 약속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팬덤을 이용한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샤오미의 마케팅 목표는 고객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고객의 의견을 제품에 적극 반영해 고객의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창출한 것이다.
레이쥔은 “사용자를 감동시킬 수 있도록, 사용자가 샤오미의 스마트폰을 써본 후 친구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가져라”라고 직원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사용자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제품을 만들어야 장기적인 수익과 기업 가치를 보장 받는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샤오미의 또 하나의 마케팅 전략은 헝거마케팅이다. 소비자들의 즉시 구매를 촉진하는 마케팅 방식으로 일부러 한정 수량만 시장에 제공해, 내놓은지 얼마 안돼 물량이 모두 팔리는 신기록을 세워 이를 또 입소문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이번에 출시한 전기차도 주문을 받자마자 단 27분 만에 5만 대의 예약 판매량을 기록했다.
“사용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샤오미의 스마트폰을 써본 후 친구들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도록 목표를 가져라”레이쥔 샤오미 회장
장학금 싹쓸이한 악바리 모범생…‘거물급 부호’ 되다
27일 포브스 실시간 억만장자 리스트에 따르면 레이쥔의 자산은 150억달러(약 20조5200억원)로 세계 부호 순위에서 127위, 중국 부호 순위는 10위에 달한다.
후베이성 센타오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레이쥔은 어릴 때부터 성실했다.
아홉살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쟈오완촌을 떠나 시내로 이사를 갔다. 그는 젠씨제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각 과목에서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모범생’을 상징하는 빨간 꽃을 달아주었고, 레이쥔의 어머니는 그가 커다란 빨간 꽃을 가슴에 달고 있는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바둑에 푹 빠져 교내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또 문학을 사랑해 소설 단편집인 ‘소설월보’를 끼고 살았다. 특히 옛 시(時)와 사(詞)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레이쥔은 명문대인 우한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장학금을 휩쓰는 ‘악바리’ 모범생이었다.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린 결과 그는 2년 만에 모든 과정을 이수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한 레이쥔은 대학 2학년 때부터 우한 전자상가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자주 찾다보니 전자상가 사장님들과 안면을 트게 됐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레이쥔은 큰 가방에 두꺼운 프로그래밍 책 세 권을 들고 다녔는데, 매번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기 힘들자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 책을 만든다. 1992년 내놓은 ‘심화 DOS프로그래밍’이라는 책은 당시 프로그래머들에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학생 레이쥔은 전자상가뿐 아니라 IT 업계 유명인사들과도 교류를 시도했다. 그는 중국판 워드프로세서인 WPS1.0을 만든 자신의 우상 추보쥔을 직접 찾아갔다. 레이쥔은 스물 세 살 때 추보쥔의 제안을 받고 소프트웨어 기업 킹소프트에 합류했다. 입사 6년 뒤인 29세에 그는 킹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킹소프트에 입사한 지 12년째였던 2003년, 그는 온라인 게임을 출시하는 도박을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게임을 해가며 직접 품질을 확인했다.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컴퓨터 네 다섯 대를 동시에 돌리며 게임을 했다.
마침내 킹소프트의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연평균 매출액이 68% 증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결과 킹소프트는 2007년 홍콩 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때 킹소프트의 모든 직원들은 환호하며 그간의 노력에 대해 서로 격려했으나 킹소프트의 위기와 재기를 함께 해온 레이쥔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는 입사 후 16년을 쉬지 않고 달린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며 첫 번째 직장에서의 은퇴를 결심했다. 이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샤오미 성공의 8할은 레이쥔의 ‘사람’ 덕분”
킹소프트를 떠난 뒤 레이쥔은 엔젤투자자로 변신했다. 그의 투자 철학은 간단하고도 명확했다. ‘투자는 사람을 보고 한다’.
레이쥔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지인에 한해서 투자를 했다. 쑨타오란이라는 친구의 과묵한 실행력이 마음에 들어 쑨타오란이 구상하고 있던 금융서비스 기업 라카라에 투자를 결심했다. 레이쥔은 쑨타오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투자 기회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쑨타오란은 이때를 회상하며 “레이쥔은 매우 겸손하게 말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또 하나의 투자 원칙은 ‘간섭하지 않는다’이다. 라카라의 기업 가치를 함께 정할 때 레이쥔과 쑨타오란이 생각하는 숫자가 달랐다. 레이쥔은 자신이 쓴 금액의 2배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를 보고 “당신이 회사를 만들었으니, 그 가치가 맞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하며 투자 유치를 직접 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 후 쑨타오란은 20여명의 투자자들을 만났지만 누구도 투자를 하겠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레이쥔은 투자 유치에 실패해 돌아온 쑨타오란에게 “사실 나는 당신이 제시했던 기대 가치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투자자들과 부딪혀 보라고 권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두 번째 투자유치는 레이쥔이 제시했던 가격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쑨타오란은 레이쥔의 설득 방식에 대해 “엔젤투자자로서 레이쥔은 창업자의 마음을 각별히 헤아려준다”며 “아주 특별한 배려였기에 나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레이쥔은 약 3년 동안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며 17개 기업에 투자했다. 그중 11곳은 처음 시작한 회사들이었다. 이들 기업은 크게 모바일 인터넷, 전자상거래, SNS 분야로 나뉜다. 중국 투자은행 이카이자본의 왕란 CEO는 레이쥔의 투자를 보며 “전 중국이 레이쥔의 시험무대”라고 평했다.
2012년 한 전문가는 당시 레이쥔이 투자한 ‘레이쥔계 기업’의 자산이 대략 150억~200억달러라고 추산했다. 레이쥔이 개인과 회사 명의로 투자한 레이쥔계 기업에는 자신이 다녔던 킹소프트, 모바일 브라우저 UC웹, 뉴욕거래소에 상장된 치타모바일 등이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는 레이쥔 자신의 자산확대는 물론 샤오미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레이쥔계 기업은 샤오미의 계열사가 돼 검색, 쇼핑, 결제 어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물인터넷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샤오미의 발전과 맥을 함께했다.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며 쌓아온 IT계의 두터운 인맥과 샤오미의 팬들인 ‘미펀’들은 레이쥔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샤오미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샤오미 성공의 8할은 레이쥔의 ‘사람’ 덕분이라고들 말한다.
“레이쥔은 투자 제안을 할 때도 겸손했다. 엔젤투자자로서의 레이쥔은 창업자의 마음을 각별히 헤아려준다.”금융서비스 기업 ‘라카라’ 창업자 쑨타오란
“이번엔 테슬라다”…‘생애 마지막 도전’ 전기차
“테슬라를 따라잡을 준비가 됐다. 내 생에 마지막 창업인 샤오미 자동차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
레이쥔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샤오미의 전기차 ‘SU7’은 지난 3월 공개 직후 24시간 동안 총 주문량이 8만8898대에 달했으며 일부 모델은 주문후 출고까지 8개월 가량이 걸릴 예정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026년 샤오미 매출 전망치를 6% 높였다.
샤오미의 ‘SU7’ 계약은 현재 10만건을 돌파해 출고 대기 기간만 30주를 넘어서고 있다. 레이쥔은 전기차 생산 역량이 올해 처음 출시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밝히며 다음 달부터는 2교대 근무를 추가해 월 최대 생산량을 2만대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레이쥔은 ‘전기차-스마트폰-가전-소프트웨어’로 이어지는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샤오미 전기차를 선택한 이용자가 샤오미의 스마트폰까지 선택하고 이어 가전 소프트웨어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샤오미는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스마트폰 이외의 하드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9.6%, 11.1%로 합치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넘어 레이쥔 자신을 뛰어넘을 차례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는 때가 우리에게는 기회다. 우리는 그가 지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생존한다.”
레이쥔은 2011년 8월 말 잡지 ‘창업자’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스티브잡스는 샤오미가 설립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레이쥔의 이 발언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스티브잡스와 이름이 나란히 오르는 상황에서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일종의 다짐이자 경외심의 표현이었다. 샤오미는 레이쥔이 선언했던 대로 단 3년 만에 중국 시장 판매량에서 애플을 뛰어넘었으며, 이듬해에는 삼성을 누르고 중국 시장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샤오미는 현재 스마트폰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 애플과 함께 글로벌 빅3사로 불리고 있다. 샤오미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서 점유율이 2022년 1%에서 2023년 2%로 2배 증가했다. 전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도 2023년 1분기 11%에서 2024년 1분기 14%까지 성장했다.
레이쥔은 잡스와 비교되는 것을 거북해했지만 잡스를 동경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18세 때 ‘실리콘밸리의 불’이라는 책을 읽고 잡스의 창업 스토리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이때 잡스는 제게 남다른 꿈을 심어 주었다. 내 목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잡스는 개인의 창조성과 천재성이 성공 요인이었다면 레이쥔은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전략을 짜나가며 성공한 인물이다.
이제는 빅3라는 명칭을 넘어 애플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샤오미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잡스가 없는 세상에서 레이쥔은 그 자신을 뛰어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는 때가 우리에겐 기회다. 우리는 그가 지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생존한다.”잡지 ‘창업자’ 인터뷰에서 레이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