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차익을 노린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된 한국 기업 수가 지난해 77개사에 달한 것으로 나왔다. 2019년 8개 사에 불과했던 게 5년만에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조사 대상 23개국 중 미국, 일본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치다. 다만 일본은 2023년 103개사로 2022년(108개사)보다 다소 줄었다. 한국만 5년 연속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초단기 차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이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장기발전을 해칠 뿐 아니라 일반 주주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만큼 기업의 방어력을 높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지난 2019~2022년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 1위는 미국, 2위는 일본이었고 3위는 캐나다·영국·독일이 번갈아 차지했다. 그런데 지난해엔 한국이 3위로 올랐다. 특히 한국은 공격받은 기업 수가 1년 만에 57%나 늘었다. 같은 기간 북미가 9.6% 증가하고, 유럽이 오히려 7.4%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이 이들의 주 타깃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들의 규모가 커지고 알짜기업이 늘어난 데다 역대급 실적을 냈음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주가가 저평가된 점을 노린 것이다.
얼마전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가 무리 지어 삼성물산을 공략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높은 배당을 요구했다. 무리한 요구로 지지를 받지 못해 방어에 성공했지만 행동주의 펀드는 더 활개칠 공산이 크다. 2003년 소버린이 SK 분쟁에서 1조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난 아픈 사례도 있다. 2016년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요구, 2019년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배당 확대 및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등 직접 개입도 노골화하고 있다. 최근엔 토종 행동주의 펀드도 가세해 중견기업까지 공략에 나서 취약한 기업들에게는 비상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긍정적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의 장기 발전 방향 제시 등으로 기업 경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성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에 맞설 기업의 방어수단이 자사주 매입 외에는 딱히 없다는 점이다. 지배구조의 취약이나 배당 등 기업이 개선해야 할 것은 손봐야 하지만 제도적 보완이 없이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최대 주주 의결권 3% 제한 등 대주주 규제는 한국이 유일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일본의 포이즌필(신주인수 선택권)처럼 방어 수단 제공 등 기업의 방어력 제고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증시 부양 밸류업도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