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시론] 건강한 교류가 필요한 이유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였고, 국가의 위상 또한 크게 상승하였다. 하지만 빨리 먹은 밥이 체한다고 했거늘, 성장이라는 모습에 가려진 그림자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형국이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식들을 보면,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도 하였지만 내면의 모습엔 독기를 품고 있는 여느 누군가처럼, 겉모습은 번지르르 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과일처럼 위태위태한 날들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칭찬보다는 혐오가, 함께 보다는 각자가 익숙하고 편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안을 두고 함께 머리를 모아 합의에 이르기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의 일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에도,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논의에서도, 학교에서도, 나아가 정치권에서도 우리는 ‘격려와 교류, 우리 함께’ 라는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을 향해 거침없이 비난을 가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기억하기보다는 약점을 먼저 공격한다. 눈부신 경제발전도 무색한 상황이다. 피터 T 콜먼(Peter T. Coleman)은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본인의 저서를 통해 미국 사회의 전반적 현상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분열은 국가적 정신질환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 역시 여기저기서 분열과 관련한 심각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최근의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여지없이 재현되었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선수들에게 격려가 우선되지는 못할망정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찾고 누군가의 편에 서서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모든 일간지의 헤드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일이든 왜 실패를 하였는가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 당연히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실패의 화살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책임소재를 찾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건강한 교류와 합의의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든, 어느 조직에서든, 사회에서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비난하기 전에 내 생각을 어떻게 건설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상대방과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이익만 앞세우거나 혹은 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본인의 입장을 포장하여서도 안 될 것이다. 특히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정책 의제일수록 솔직하고 건강한 교류가 필요하다. 내 것을 조금은 양보할 줄 아는 자세가, 사회 전체의 합을 위해 내 이익을 상대방과 나누는 지혜가 각 개인과 집단에게 필요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을 포용하며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 공동체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이고 목적이다.

앞으로 두 달도 남지 않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각종 정책이 나오고 있다. 여러 정책과 논의가 단편적인 이슈로 묻히기 보다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의제 앞에서 구성원 간 건강한 교류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