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에서 민생 전도사로’
13일로 취임 255일이 된 민주당 김한길 당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꺼내들었다. 경제민주화 입법을 통해 ‘민생’을 다독이고, 이를 토대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주장도 내놨다. ‘북한인권’역시 ‘민생’의 틀로 묶었다. 지난해 야당 대표의 최장기 ‘장외투쟁(100일)’ 기록을 세웠던 김 대표가 ‘민생전도사’로 탈바꿈 한 것이다. 반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요구’는 단 석줄에 그쳤다. 집권 2년차, ‘온건파’ 김 대표가 ‘제 색(色)’을 찾았다는 평가다.
▶ 金, 민생 전도사 변신?= 김 대표는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놀랐다. 박 대통령은 막연하게 창조경제로 국민소득 4만달러시대로 가자고 하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픈 이들에겐 매우 공허하게 들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한국의 노인ㆍ청소년 자살률이 1위라는 점을 언급하며 “이제 경제민주화로 어려운 분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며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회견에서 ‘민생’을 언급한 횟수는 모두 14번. 이날 김 대표가 사용한 단일 단어 가운데 최다다. 김 대표가 ‘민생’ 설명에 할애한 회견문 분량은 4페이지 가운데 2페이지에 이른다.
민주당 내 ‘뜨거운 감자’인 북한인권에 대해서도 그는 ‘민생’ 틀을 썼다. 김 대표는 “북한의 인권과 민생을 개선키 위한 ’북한인권민생법’을 당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민주당은 새누리당으로부터 ‘북한 인권에 대해선 침묵한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실질적인 북한의 인권 향상’을 위해 북한 당국이 예민해하는 ‘인권’에 대해 ‘모르쇠’또는 최소한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을 받던 민주당이 ‘북한인권민생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전향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김 대표는 ▷사회적 대타협위원회 설치 촉구 ▷지방선거 승리 ▷철도 민영화 저지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강하게 ‘대치전선’을 형성중인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한 언급은 단 3줄에 그쳤다. 김 대표는 “대선관련 의혹들의 진상규명은 모두 특검에 맡기자.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언급했지만, 회견문 내 11꼭지 가운데 가장 분량이 적었다.
▶ ‘글쟁이’의 ‘한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기도 한 김 대표의 회견문엔 꼬박꼬박 그의 당시 고민이 흠뻑 묻어있다. 2012년 대선 패배후 첫 당대표가 된 그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당 내에서 강하게 밀어닥친 대선 패배 책임론이 김 대표가 당권 장악의 주요 배경이었다면, 그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것이 바로 민주당의 변화였다. 당의 고질로 여겨졌던 ‘계파 갈등’과 관련한 언급도 다수 제기됐다. 그러나 김 대표의 생각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때문에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대표 취임 100일이자, 김 대표의 아버지(김철 옹)의 기일이기도 했던 지난 8월 11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민주주의’를 13번이나 언급했다. 검찰이 ‘김용판·원세훈’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2012년 대선이 공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러졌을 공산이 커지던 시점에 김 대표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강조했다. 학창시절 ‘짱돌’한번 들어보지 않았던 김 대표의 입에서 ‘투쟁’언급도 심심찮게 나왔다.
집권 2년차로 접어든 김 대표의 당면 과제는 오는 6월 4일 열리는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다. 이를 위해 꺼내든 김 대표의 ‘한수’가 바로 ‘민생’으로 요약되는 한 단어에 들어있다. 민생 챙기기를 통해 민심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는 각오다.
▶安 무언급?= 회견에선 그러나 안철수 의원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회견문에 등장한 구절 가운데 안 의원을 연상시킬 수 있는 구절은‘야권의 재구성’이 전부다.
김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하게 된다면 민주당이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다”며 “정치혁신으로 경쟁해가면서,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한지 여부를 국민의 뜻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6월 선거에서 안 의원과의 ‘연대’를 두고 속내가 복잡한 상황이다. 너무 서둘러 ‘연대’를 언급했다간 ‘감동’이 떨어질 것이 우려스럽고, 그렇다고 안 의원측이 연대에 대해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민주당 내에선 ‘야권 분열은 여권 승리’라며 안 의원측을 압박하고 있지만, 안 의원측은 ‘전국에 모두 후보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다할 언급을 꺼내지 않음으로써, 당분간 당 내에서도 ‘연대’와 관련한 언급이 자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