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정부부처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제기구 한국 사무소는 지난해 여름 ‘리서치 및 행정업무’를 지원할 인턴 모집공고를 냈다.
주 2회 일하는 이 채용공고의 지원자격은 ▷대학원 재학생 이상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토익 850점이상 ▷컴퓨터 스킬이 능숙한 사람 ▷업무에 능동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 등 네 가지였다.
이 단체는 또한 개발도상국 협력사업과 관련한 국가별 리서치 업무를 지원하는 만큼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등 외국어 우수자를 선호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하지만 이같은 고학력ㆍ고스펙으로 채용된 이들은 식사비와 교통비만 받고 무보수로 일을 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정부부처로부터 받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고 인턴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저임금 혹은 무급으로 인턴을 채용하는 ‘열정착취’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부 정부가 지원하는 기관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회 보좌업무도 무급ㆍ저임금 인력을 활용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패션업계, 예술계 등에서 터무니없는 처우로 인턴을 채용해 ‘열정착취’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지만, 국제기구나 공공기관는 ‘선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이같은 논란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난민지원이나 탈북자 교육 등 공적인 업무인 데다, 상급기관에서 받는 예산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유엔산하 국제기구 국내 사무소 관계자는 “정부부처에서 자금을 지원받는데 예산이 그렇게 많지 않다”며 “고급인력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난민지원관련 단체에서는 “급여수준은 해외에 근거를 둔 국제기구 본부에서 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이 좋은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국제기구 인턴 자리는 무보수라도 경쟁률은 높다. 두어 명의 직원을 채용하는데 석ㆍ박사 학위 소지자나 해외대학 출신 등의 고급 인력 수십 명이 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계자들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돈보다 꿈을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직자들은 “직무경험을 하기 어려운 분야인 데다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보수라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무급인턴을 아예 금지하거나 인턴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도 무급인턴이 ‘의정체험’ 등으로 둔갑해 활용되고 있어 이같은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해 말 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실은 ‘정책인턴 실무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무급인턴 채용공고를 냈다가 구직자들로부터 “노예를 뽑겠다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구직과정에서 경험, 경력 등의 스펙이 요구되기 때문에 무급이더라도 젊은이들은 뛰어들 수밖에 없다”며 “인턴이더라도 ‘교육생’이나 ‘자원봉사자’가 아닌 ‘근로자’로 분류될 경우 엄연히 임금을 지급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