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수원)=김지헌 기자] “삼성 파운드리가 3나노미터 공정 이후 최신 기술에서는 분명히 TSMC를 뛰어넘는 타이밍을 확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성의 최대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인 에이디테크놀로지의 박준규 대표는 최근 경기도 수원 에이디테크놀로지 본사에서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 반도체 기술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대표는 1992년부터 삼성전자 주문형반도체(ASIC)팀에서 반도체 개발 경험을 쌓은 뒤 2005년 에이디테크놀로지에 합류해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다. 박 대표는 삼성이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뒤 기술 노하우가 점차 쌓이면서, 첨단 공정에서 TSMC에 대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최근 상황을 보면, 박 대표의 발언이 ‘빈말’이 아니다. TSMC는 최근 열린 ‘TSMC 기술 심포지엄’에서 올해 양산 예정이던 3나노 칩(N3E)을 내년에 양산하겠다고 변경된 로드맵(기술 계획)을 공개했다. 업계에선 GAA 이전 수준으로 평가받는 ‘핀펫 기술’을 사용한 TSMC의 3나노 칩 성능이 계획대로 구현되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삼성의 역전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5년간 TSMC의 디자인 하우스 파트너였던 에이디테크놀로지는 2019년 삼성의 디자인하우스 파트너로 소속을 변경했다. 일각에선 ‘미쳤다’는 다소 과격한 반응도 나왔다. 당장의 수익을 생각하면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인 TSMC의 손을 잡는 게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디자인하우스란 팹리스(반도체 칩 설계전문) 기업이 삼성이나 TSMC 같은 파운드리 회사에서 제대로 칩을 만들 수 있도록 중간 설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칩 제작에 필요한 ▷시놉시스 등이 만드는 설계자산(IP) ▷라이브러리(메모리 등) ▷파운드리를 위한 물리적 설계 등을 수행하며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소통을 돕는다.
박 대표는 TSMC에서 삼성 파운드리로 간 것이 오히려 회사 수익성을 위한 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해외 기업들을 통한 매출 상승 기회를 타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8~2019년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위기를 맞았다. 우선 매출처인 팹리스 중 국내 기업들의 발주 금액은 극히 미미했다. 해외로 나가야 했다. 거기에 2019년 SK하이닉스가 자사의 낸드플래시 콘트롤러 공급처를 에이디테크놀로지에서 TSMC의 디자인하우스인 글로벌유니칩(GUC)로 바꾸면서,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 해외 팹리스 고객사를 에이디테크놀로지가 직접 수주할 수 있게 되면서 외형 성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5나노 이하 첨단 칩을 맡기는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고객사인 팹리스와 직접 계약하는 ‘턴키 계약’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능해지면서 생긴 변화다. 기존에는 삼성파운드리가 확보한 고객사를 위탁받아 칩 설계를 돕는 데 그쳤으나, 이제는 턴키 계약 덕에 직접 고객사를 데려와 삼성 파운드리에 연결해주는 비즈니스가 가능해졌다. ‘함께 고객사를 발굴하는 파트너사’로서 위상이 강화됐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삼성 파운드리와 합을 맞추면서 시너지를 내기 위한 ‘3가지 전략’에 집중한 것도 주효했다. 첫째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TSMC와 다른 삼성파운드리의 칩 설계 강점을 찾는데 3년간 공을 들였다.
둘째로, TSMC의 칩 생태계를 삼성이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속 중이다. 삼성의 고객사들은 ‘TSMC에서는 되고, 삼성에서 안 되는 칩 부품’에 갈증을 느낀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이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부터 50여명으로 구성된 ‘인프라팀’을 운영, 삼성을 지원하는 메모리 라이브러리 등을 지원하는 데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셋째로 클라우드 서버, 슈퍼컴퓨터 등의 이른바 ‘큰 칩’ 고객들을 지속 발굴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도 노력 중이다. 글로벌 IP 업체인 암(ARM)과의 협업은 이때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암이 만든 ‘ARM 인증 디자인파트너(AADP)’에 에이디테크놀로지가 가입해 칩 기술을 미리 고객사들이 맛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최근 삼성이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파운드리 공정 역량을 강화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삼성은 최근 진행 중인 파운드리 포럼 2023을 통해 “14나노와 8나노 등 구형 공정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표는 “삼성이 과거 진행한 공정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TSMC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진정한 파운드리 기업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한다”며 “삼성의 3나노 뿐 아니라 14나노와 8공정 역시 매우 우수한 상태로 개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과 함께 회사의 성장 포텐셜(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국면을 맞이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