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매시장 낙찰총액 1위
위작논란 선·점 시리즈보다
바람·대화 시리즈 더 활발한 거래
세계적 인지도·생존작가 메리트도
“이우환 브랜드 막강…시기별 작품
중요도 논의 시간 걸릴 것”
“프라이빗(비공개 거래)으로 나온 작품 중에 거래되는 건 이우환 뿐이예요. 가끔 김창열 화백 정도?” 아트 딜러로 활동하는 A씨는 최근 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위작 논란에 대해서도 “점(From point)이나 선(From line)은 5년전에도 문제가 있었고, 요즘 고객들이 원하는 건 바람(With winds), 대화(Dialogue), 조응(Correspondence) 시리즈”라며 “별 영향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우환 독주다. 과장해서 말하면 국내 작가 중 활발하게 거래되는 작가가 이우환 밖에 없다고 할 정도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2020 국내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 자료에 따르면, 이우환이 낙찰총액 149억70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엔 김환기가 249억60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으나 2020년엔 57억원으로 줄어들어 1위를 이우환에 내줬다. 이우환 작가의 낙찰률은 78.95%에 달해 평균 낙찰률 60.61%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시장 선호도가 크다고 풀이된다. 최고 낙찰가 30순위에서 무려 10점이 이우환 작품이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장감정협회 이사장은 “생존 현역작가라는 점과 2, 3순위에 비해 2배 가까운 작품수가 출품됐음에도 높은 낙찰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시장 선호도가 높고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고 낙찰가 30위에 든 이우환의 작품을 살펴보면 ‘점으로부터 No.770100’(K옥션·7월 15일) 1점, ‘선으로부터’(1978년·서울옥션·12월 15일) 1점을 제외하고는 ‘바람’시리즈 2점, ‘대화’ 6점이 거래됐다. 위작논란에 휩쌓인 선, 점 시리즈보다는 바람, 대화 등의 시리즈가 더 활발하게 거래됐다. 콜렉터들의 신작 선호에 이우환의 최근 시리즈의 가격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대화’ 신작은 100호 유화가 8억을 호가한다. 호당 80만원인데, 시장에서는 호당 100만원도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쯤 되면 왜 이렇게 이우환에 대해 시장이 열광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세계적 인지도다. 즉, 브랜드다. 국내 작가 중 단연 1위다. 생존작가라는 것도 메리트다. 이우환은 구겐하임미술관(2011년), 베르사유궁전(2014년), 퐁피두메츠센터(2019년), 디아비콘(2019년), 허시혼미술관(2019년)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개최하며 숨가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이우환을 대체 할 수 있는 한국작가는 없다. 김복기 아트인컬쳐 대표는 최근 출간한 책 ‘이우환(Lee Ufan)’에서 “원숙한 장년기의 창작은 폭과 깊이, 질과 양에서 가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고 평한다.
다음은 작품의 근본이 되는 철학이다. 많은 평론가와 연구자들은 이우환 작품의 핵심으로 ‘만남과 대화’를 꼽는다. 이우환은 일본에서 비평가이자 이론가로 먼저 이름을 날렸다. 1960년대 말 일본 미술가들의 모임인 ‘모노하(物派)’의 창립멤버로 활동했다.
바바라 로즈는 2015년 페이스갤러리 뉴욕 전 서평에서 “서구미술의 특징인 주체와 객체의 이원성에서 자유로운, 사물과 자연의 만남을 통한 미술에 대한 이론을 언어화했다”고 평가하면서 작가로서 이우환에 대해서는 “그의 회화는 바탕에 하나의 색상만을 사용하지만 그는 엄밀히 말해 모노크롬 화가라기보다 콘셉추얼한 모노톤 화가에 가깝다”고 했다.
이같은 이론적 평가를 바탕으로 이우환은 미술사에서 지위를 획득했다. 로즈는 “아시아미술과 서구미술의 상반된 경향을 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한 작업에 끊임없이 매진한다. 글로벌리즘 대신 보편성을 탐구한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건 이우환에 대한 시장에서의 평가가 이론적 평가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 콜렉터는 “1990년대 ‘점’이나 ‘선’을 구하려면, 일본에서 비행기 떴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동 화랑으로 달려왔다. 그 집에서 다른 한국작가 작품 1~2점을 사야 겨우 이우환 작품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시장에서 늘 수요가 공급보다 컸던 셈이다. 30년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인기가 있다보니 이젠 안전자산으로 인식된다. 미술품 경매사에서 근무하는 B씨는 “이우환 작품은 일종의 안전자산이다. 시리즈, 연도, 사이즈, 색상만 알려주면 (작품)안보고 바로 산다”고 말했다. 부동산에서 일반 주택보다 아파트 거래가 활발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역, 동, 호수, 평형, 아파트 브랜드만 알면 바로 거래가 가능한 것과 같다.
위작논란이 있었던 점과 선을 제하고 다른 시리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위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신작보다 구작이 더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우환의 경우는 위작논란 때문인지 근작 선호가 나타난다. B씨는 “위작논란도 있지만, 작가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예술성이 무르익었다는 평가가 시장은 물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나면 작품에서 힘이 빠지는 대부분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다만 위작논란은 꼭 풀어야할 숙제다. KBS 시사기획 창의 ‘이우환 대 이우환’(2020.12.)보도에 따르면, 옥션이나 전시·도록에서 공개된 ‘점’·‘선’시리즈 중 80점의 일련번호가 중복됐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이보다 더 많은 위작이 유통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매매 실종’으로만 표현된다. ‘긴 침묵’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이우환의 브랜드는 확실히 막강하다. 그러나 앤디워홀도 시기별로 작품 위계가 있다. 이우환의 고유한 특성이 발휘된 것과 시기적 중요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이 편차가 시장에 반영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학문적 연구가 위작 논란을 풀어낼 실마리로 작동할 수 있을까. 시장은 여전히 이우환을 추종하고 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