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美中 갈등에 ‘외교적 압박’ 강화 모양새
“韓, 민감한 문제 제대로 처리해야” 강경 발언
文 특보 만나선 “신냉전 반대”…美 비판하기도
방한 결과 두고도 “韓-中 시각 차이” 우려 나와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 이후 한중 관계가 오히려 미묘해지는 분위기다. 애초 한중 협력 관계를 재확인하겠다는 왕 부장이 외교장관 회담에서 자국의 미중 관계 구상 설명에만 집중한 데다가 회담 결과 발표를 두고도 일방적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0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왕 부장은 지난 2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미중 갈등 관계를 의식한 자국의 구상 설명에 집중했다. 특히 중국의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 구상 참여 요구와 함께 ‘한중 외교안보 2+2 대화 재개’,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ᆞ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 참여’,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담에서 왕 부장이 강조한 사안은 대부분 미중 갈등 관계와 연관됐다. 당장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는 미국의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 배제에 맞선 대응책이고, 중국이 요구한 2+2 대화 역시 중국의 군사 협력 강화 정책으로 미국 주도의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왕 부장은 중국 측 입장을 설명하며 고압적인 표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외교부는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왕 부장이) 한국이 한중간 민감한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고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처리하라”는 등의 표현은 외교장관 간의 대화에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표현으로, 일부에서는 “결례에 가깝다”는 불만까지 나왔다.
게다가 중국 측의 자체 구상 설명이 계속되며 정작 우리 정부의 주요 관심 사안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협력 문제는 회담 이후에 진행된 오찬에서 논의됐다. 한 중국 측 외교 소식통은 “왕 부장이 중국의 주요 국제 정책을 설명하고 한국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이어지며 시간이 모자랐다”면서도 “다만, 이후 오찬에서 다른 이야기도 충분히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왕 부장의 주요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중국측 입장 표시가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왕 부장의 강경 발언은 우리 정부 핵심 인사들과의 만남에서도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7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만난 자리에서 왕 부장이 “신냉전을 부추기는 시도는 역사 발전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소개했다. 그간 중국은 신냉전을 부추긴다며 미국을 강하게 비난해왔는데, 사실상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둔 한국에 ‘중립’을 직접 요구한 셈이다.
방한 결과 발표를 두고도 한중간 미묘한 온도 차가 드러났다. 중국은 왕 부장의 외교장관 회담 성과를 ‘10개 합의’로 표현했다. ‘한중 관계 미래 발전위원회' 설립과 2+2 대화 신설 등이 거론됐는데, 우리 정부 발표에는 없는 내용이 포함된 데다가 “(강 장관이) '글로벌 데이터 보안 이니셔티브'를 적극 검토할 의향이 있다”는 문구까지 거론되며 외교가에서는 양국 간 간극이 큰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외교부는 회담 결과 발표를 두고 “우리 자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이 정리되는 것이고, 중국은 중국이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 안에서도 발표 내용을 두고 일부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이 자체 구상 홍보를 위해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강조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