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년)는 1964년 바이에른주 공영방송 TV대학에서 매주 한 번 13주 동안 철학강의를 했다.‘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이란 제목이다.
야스퍼스는 강의 내용을 책으로도 펴냈는데, 머리말에서 책 제목의 의미를 밝혀놓았다. ‘작은’수업이란 철학의 작은 주제들에 대해 말하거나 철학하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쉬운 기초들을 설명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하기에서 ‘작은’ 주제는 없으며, 곧 바로 큰 주제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란 것. ‘작은’이란 표현은 다름아닌 간결함만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수업’의 의미는 시청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스스로 생각의 길을 가다 진정한 철학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게 되는 걸 의미한다.
열 세가지 주제의 강의를 담은 ‘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이학사)은 우주와 생명체, 역사와 현재, 인간과 정치, 사랑과 죽음 등 우리 삶의 근원, 근본적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숙고한다. 각 강의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경험에서 시작해 논리를 밀고나가면서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지점에서 야스퍼스는 삶의 의미와 과제라는 질문을 던진다.
첫 강의 ‘우주와 생명체’에선 과학적 발견으로 거대 우주와 소립자 등 물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지만 그렇다고 그런 발견과 지식이 세계에 대한 통일된 개념을 제시하지 못하며, 특정 영역에서만 유효함을 설명한다. 야스퍼스는 과학이 알려준 것을 근본적 존재 자체로 간주하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때 인간의 실존이 불행해지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역사와 현재’강의에선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해석하는것에 반대하며 철학을 통한 미래의 개방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치적 성장’에선, 폭력과 자유, 정치의 관계를, ‘공개성’ 강의에선 정치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비밀유지와 검열, 민주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개방성에 대해 얘기한다.
야스퍼스는 1960년대 철학이 밀려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대학에서 밀려나고 정치가 무력한 현실을 지적하며, 언젠가 좌절이 찾아와 인간이 몰락할 때, 철학은 사랑과 신뢰로 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은 오로지 철학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칼 야스퍼스 지음, 한충수 옮김/이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