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한일관계 어려워 한국 측이 계기 마련해야”

박지원, 한일 미래지향 정상선언 발표 구상 전달

“스가, 한일관계 복원 계기는 韓이 만들라고 요구”…박지원 방일에도 꿈쩍않는 日
일본 언론들은 11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전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 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담은 새로운 공동선언을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박 원장이 스가 총리와 만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응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만나 새로운 한일정상선언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수출규제 문제 등으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관계 출구찾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11일 박 원장이 전날 스가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은 새로운 한일공동선언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와 함께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한일정상선언을 발표하는 구상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선 오부치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시인하며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인식과 전후 평화·번영 노력을 평가한 바 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 대한 양국 국민의 염원을 비롯해 한일관계 발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른바 ‘문재인-스가 선언’은 한일 양국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실상 전방위에 걸쳐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 차원의 정치적 결단을 통한 양국관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내년 7월 도쿄 올림픽과 연내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신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타이밍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 악화가 국정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여당 내에서도 이 같은 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 여야 의원들과 함께 오는 12일 일본을 찾는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언급에서 확인된다. 김 의원은 방일에 앞서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사법 판단에 개입하면 혼란을 일으킨다”면서 “문 대통령의 선택 폭은 매우 좁지만 해결에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정치적 결단’을 강조했다. 또 “경제 문제 등도 포함한 패키지로 해결하고 싶다”고도 했다.

문제는 일본의 반응이다. 일본은 박 원장의 제안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스가 총리는 박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계기를 한국 측이 만들라고 다시 요구했다고 교토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스가 총리의 발언에 대해 “현시점에선 새로운 선언 검토에 난색을 보인 형태”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이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문재인-스가 선언’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박 원장의 방일과 스가 총리와의 만남, 그리고 의원들의 방일 등 양국 간 교류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단초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와 만난 뒤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충분히 말씀드렸고, 한일 양 정상이 해결해야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대화하면 잘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