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2011년 ‘자본시장법’ 위반혐의 기소
대법 무죄 파기환송심 공소장 변경 안해
2019년 다시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재수사
1심 징역 5년·추징 335억…항소 결과 주목
환율 0.1% 등락을 예측해 돈을 걸고 틀리면 판돈 전액을 잃고, 맞히면 수수료를 뗀 일정 금액을 받아 가는 일명 ‘FX(Foreign Exchange)렌트’ 를 도박으로 볼 지에 대해 법원과 검찰이 10년 가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항소심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가운데, FX렌트 사업을 도박공간 개설죄로 인정한 1심 판단이 유지될지 주목된다.
인천지법 형사4부(부장 고영구)는 10일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징역 5년에 추징금 335억원을 선고 받은 조모(61) 씨 일당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이 사건의 1심 판결문에선 2015년 대법원의 자본시장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이후 도박장 개설죄로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아 사안을 키웠다는 사실이 적시됐다. FX렌트를 기소했던 검사 민모 씨가 퇴임 후 FX렌트 고문 변호사를 맡은 사실도 지적됐다.
조씨가 처음 재판에 넘겨진 것은 2011년이다. 조씨는 2010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 60평 규모 사무실을 빌려 컴퓨터 16대를 설치했다. 환율 상승과 하락에 소액을 베팅하게 하는 게임 FX렌트를 만들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조씨 등은 회원들로부터 보증금 명목으로 10만원을 받는다. 환율이 0.1% 오를지, 내릴지에 돈을 걸게 했다. 만약 환율 변동을 맞히면 회원은 19만원(보증금 10만원+수수료를 제외한 수익금 9만원)을 챙긴다. 맞히지 못하면 10만원은 조씨의 몫이 된다.
조씨의 FX렌트 사업은 매월 5000만원의 수익을 올리며 인기를 끌었지만 4개월 만에 덜미가 잡혔다. 2011년 3월 서울북부지검은 조씨의 사업에 대해 ‘도박개장죄’를 검토했다. 그러나 검찰은 “금융투자에 의한 수익이나 손실 자체가 우연한 결과에 좌우된 것이어서 도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며 도박개장죄로 기소하지 않았다. 대신 검찰은 FX렌트 사업을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봤다. “인가 없이 금융투자업을 했다”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조씨를 재판에 넘겼다. 1, 2심 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유죄로 판단, 징역 10월에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FX렌트에 대한 판단은 대법원에 뒤집혔다. 대법원은 2015년 9월 조씨의 상고심에서 “이 사건 거래는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걸고 단시간 내에 환율이 오를 것인지 아니면 내릴 것인지를 맞히는 일종의 도박으로, 자본시장법상 파생상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서울북부지검은 조씨에게 도박공간개설죄를 적용하는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자본시장법에 대해서만 무죄로 판결해 최종 확정됐다. 법원의 최종 무죄 판단을 앞세워 조씨는 FX렌트에 대해 특허를 내고 영업을 계속했다.
조씨의 FX렌트 사업은 2019년 11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다시 수사할 때까지 계속됐다. 검찰은 이번엔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1만4075명이 참여해 총 판돈 1조3823억원이 오고 간 도박으로 보고 유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FX렌트 사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박을 발명하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조씨는 ‘금융후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획기적인 금융투자상품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음에도 정부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다’며 수사기관을 비난했지만, 재판부는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1~4년)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