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일부터 대치·삼성·청담·잠실동 지정
사례별로 애매한 적용기준…혼란 지속
현행법상 최대 5년까지 지정 가능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침해 논란 커질 듯”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정부가 서울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가는 명확한 임대 기준이 없고, 같은 아파트 내에서는 물론 신축·구축 간 차이도 있어 시장 혼란이 커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신도시·도로 조성 등에 사용했던 토지거래허가제를, 정부가 규제를 위해 아파트가 밀집된 도심지역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혼란이 가중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 강남 한복판에 토지거래허가 적용은 처음…주택거래허가 노렸나= 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인구가 밀집한 강남 한복판에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6·17 대책의 후속조치에 따라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투기수요가 유입될 수 있는 곳을 이달 23일부터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택은 대지지분 18㎡, 상가는 20㎡를 초과하는 모든 거래가 구청장의 허가 대상이 된다. 주택은 ‘실거주’, 상가는 ‘직접 운영’이 원칙이다.
지난 1978년 도입된 토지거래허가제는 당초 신도시나 도로를 조성할 때 투기세력의 유입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가 이 제도를 주택·상가 등이 많은 도심지역에 적용한 건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 및 사유재산권 보호와 충돌할 수 있는 민감한 제도임에도, 시행 전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사례별로 기준이 들쑥날쑥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둘러싼 각각의 해석도 나오며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 허가판단은 구청장 맘대로?…신·구축 간 형평성 문제도= 정부는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상가는 아파트와 달리 ‘일부 임대’를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건물 전체 면적의 몇 퍼센트(%)까지 임대를 허용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은 내놓지 않았다. 허가권자인 구청장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인 한 구청 관계자는 “일단 구체적인 사례가 접수돼야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 일대 공인중개사는 “1호에 도전하는 용감한 사례가 나오길 숨죽여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축·구축 간 ‘갭투자’ 허용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기본적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기존 세입자의 전세기간이 2~3개월 정도 남은 주택만 매수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을 승계한 갭투자는 실거주가 아니어서 허가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새로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예외 대상이다. 전세계약 체결도 가능할뿐더러 2년 실거주 의무도 없다. 이는 형평성 논란에 더해 정부가 갭투자할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토지규제를 도심에…기준 세우기 어렵고 빈틈도=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를 인구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 서둘러 도입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토지거래허가제는 신도시나 택지개발지구 조성 등에 적용해오던 것”이라며 “신축과 구축 등 다양한 사례가 있는 주택이나 상가에 이를 적용하려다 보니 기준을 명확히 세울 수 없고 빈틈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나 해당·인접 시군에 거주하는 사람은 주택을 살 때 소명해야 하는데,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 논란도 커질 수 있다”고 봤다.
대지면적이나 법정동 기준에 따라 생기는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동일 단지 안에서도 대지면적이 18㎡에 못 미치는 초소형 아파트는 허가 대상이 아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27㎡,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 1단지’ 전용 31㎡에 매수 문의가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행정동으로는 잠실4·6동이지만, 법정동이 신천동이어서 규제를 피해간 ‘파크리오’ 등으로 투자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설명이다.
▶개발사업 영향 단기 그치지 않아…최대 5년 가능성도= 정부는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기간을 내년 6월22일까지 1년간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잠실 MICE 개발과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단기간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연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필요한 경우 최대 5년까지도 지정될 수 있다”며 “거래가 위축되면서 시장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