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시민단체·경찰·법원에서 피해 진술 반복하다 계속되는 증언에 트라우마 재현돼”
“재판 과정서 성인 피해자에 대한 배려 있어야…무료 법률구조기금도 고갈돼 대책 필요”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만들어 여성의 성 착취물을 제작·판매·유포한 ‘박사’ 조주빈(25)이 검거된 지 24일로 정확히 100일이 지났지만 피해 여성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 여성은 주위에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우려하며 수사와 재판을 이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담소·경찰은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반복하며 트라우마가 발생, 고통을 겪고 있다.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 착취물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대학생 기자단 ‘추적단 불꽃’은 이날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상담 창구의 일원화’를 꼽았다. 불꽃의 ‘불’은 “여성가족부·시민단체·경찰에서 각각 따로 우후죽순식 피해자 지원을 하다 보니 피해 여성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본인의 입으로 얘기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계속해서 트라우마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박사방 관련 재판이 여러 차례로 나뉘어 있어 각 재판마다 피해자들이 진술하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이현우)에서 주범인 ‘조주빈은 공범 두 명인 이모(16)군, 김모(24)씨와 함께 재판을 받는 중이다. 박사방을 홍보하고 성 착취 영상물 유포한 8급 공무원 ‘랄로’ 천모(29)씨도 같은 재판부에서 심리중이지만 별도 사건으로 분리돼 재판중이라 피해자들은 각 재판마다 증언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불꽃 측은 “아동 성범죄 피해는 보호자가 대리 피해 진술을 할 수 있지만 성인 피해자의 경우 대리 진술이 불가능하다”며 “성범죄 공판 시 진술 과정에서 성인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성범죄 전반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고려한 대응책과 구제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피해자들은 수사 기관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신고해도 경찰에게 해당 피해가 왜 성범죄인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불꽃 측은 “일선 경찰서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자신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하거나 사진에 성적으로 모욕을 주는 행위를 당한 한 지인능욕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가 ‘이게 왜 성범죄냐’는 식의 경찰의 태도를 마주했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번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 착취 사건뿐 아니라 전반적인 성범죄 법률 지원책도 부족한 실정이다. 여가부가 무료법률구조기금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 선임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달 현재 해당 기금액은 고갈된 상황이다. 불꽃 측은 “현재 피해자 지원에 대한 범죄 수익금은 6%만 사용 되고 있다”며 “해당 비율을 20%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