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 등 주요 수출품목 부진
중·미·EU 등 선진국 수요도 감소
소부장 기술 독립화 경쟁력 강화
기업들 해외공장 리쇼어링 지원
공급 다변화 등 통상정책 전환을
‘코로나19’로 글로벌 교역이 결정타를 맞으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초기 중국 중심으로 발생한 공급 충격이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면서 발 묶인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간적 여유마저 없어 새로운 거래처 발굴이나 수출선 다변화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 수출 피해도 이달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 타격을 고려해 내수 확대에 중점을 두고 글로벌 가치사슬(GVC) 붕괴에 따른 공급망 다변화나 부품 국산화에 총력을 다해야한다고 조언했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단가는 11.7% 급락했다. 지난해 평균 수준인 -10.6%보다 감소 폭이 큰 것이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출 물량이 많아도 수출액이 감소할 수 있다. 업종별로는 석유제품 -22.7%, 석유화학 -17.2%, 섬유 -9.7%, 철강 -9.1% 등의 하락세가 크게 나타났다.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석유화학 제품(에틸렌·프로필렌 등)과 석유 제품(휘발유·경유 등)의 가격이 내려갔다는 의미다. 석유제품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7.5%를 차지해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수출 상위 3위 품목이다.
다른 주력 수출품목들도 줄줄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달 1~10일 기준 자동차부품(-31.8%), 무선통신기기(-23.1%), 승용차(-7.1%), 반도체(-1.5%) 등 주요 수출 품목이 대부분 부진했다.
수출 상대국별로도 중국(-10.2%), 미국(-3.4%), EU(-20.1%), 베트남(-25.1%), 일본(-7%), 중남미(-51.2%), 중동(-1.2%) 등 주요 시장에서 일제히 수출이 위축됐다. 특히 지난달부터 북미와 유럽 지역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이 지역 생산과 소비도 사실상 멈춰섰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수요 감소가 반영되는 이달 후반부터는 수출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수출에서 미국과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24.9%다.
산업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6일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주요 공장 약 27%가 가동을 멈춘 상태다. 다만 국내 생산 현장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며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수급 차질 또한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우리의 수입구조가 중간재에 치중돼 있어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제조업이 직격탄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수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입구조는 중간재 수입 비중이 49.7%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1차 산품 23.2%, 소비재 13.7%, 자본재 13.0%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해 수입에 문제가 발생하면 수출용 상품의 제조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초기 와이어링 하니스(배선 뭉치)의 대(對)중국 수입이 막히면서 국내 상당수 자동차공장의 가동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한국의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입 규모는 1056억달러로 전체의 21.3%를 차지했다. 특히 대중 수입의존도가 100%인 품목도 347개 25억40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처럼 글로벌 가치사슬과 밀접하게 관련된 품목의 수입 차질은 수출 등 산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대응하기 위해 부품 국산화와 해외공장을 국내로 유턴시키는 ‘리쇼어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은 “코로나19는 장기적으로 GVC 변화를 가속할 것”이라며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국산화, 스마트 공장 지원을 통한 리쇼어링 지원 및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제품 기획이나 제조 엔지니어링에서 브랜드 사용료 또는 기술료 형태로 부가가치를 획득하는 통상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등 한 국가에 의존한 글로벌 공급망의 위험성이 인식되면서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해졌다”면서 “핵심 전략물자의 수급을 통제하고 필요하다면 일정 부문 국내생산을 유도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