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다. 여기에 ‘경제’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공정한 사회가 ‘성장’까지 이룰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22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공정경제 성과 모음집’ 책자를 발간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11개 부처가 만든 공정경제 분야 성과를 모두 집약했다. 책은 170쪽에 달한다.
정부는 공정경제 관계부처회의서 그간 성과를 알릴 기회가 부족했다며, 책자를 만들어 대국민 홍보를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성과가 적다는 판단이 있었다.
외부선 다른 국정과제인 소득주도성장이나 혁신성장에 비해 공정경제가 일부 긍정적인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가 많았다. 본지가 지난해 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시했던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반’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평이 다수 나왔다. 소외됐던 을의 눈물을 닦아주고, 불합리했던 거래관행을 개선하는 데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수치상으로도 효과가 나타났다. 공정위의 서면실태조사 등을 보면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를 경험했다는 하도급 업체의 비율이 2년 새 3.0%포인트 줄었고, 판매장려금·수수료 등 부담이 줄었다는 납품업자 비율은 18.2% 늘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순환출자 고리 수를 약 95% 이상 줄였다.
하지만 여기에 ‘옥에 티’가 분명 있다. 정부는 방대한 자료에서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3000억원 초과 구간의 과세표준을 신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지방소득세 포함 27.5%)로 인상했고,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를 1~3%에서 0~2%로 축소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 대기업의 생산성설비 등 투자 세액공제를 3%에서 1%로 낮추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법인세를 감면했다는 자화자찬도 담겼다. 여기에 대기업을 ‘악’ 또는 ‘적’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다. 모든 경제주체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反) 대기업 정책으로 현실화됐다.
이로써 지난 2년간 우리나라 경제는 오히려 후퇴했다. 2014~2019년 사이 법인세율을 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16개국에 달했지만 한국을 포함한 칠레, 그리스 등 6개국만이 법인세를 올렸다. OECD 평균(23.5%)을 크게 웃돌게 되며 법인세율 순위도 11위로 상위권에 들게 됐다.
법인세 장벽은 해외 진출 기업들의 유턴을 막았다. 2014년 22개를 기록한 이후 올해까지 매년 4~12개가량에 그쳤다. 국내 설비투자도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공정경제로 중기·소상공인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성장이 없다면 공정이라는 가치를 확립하기 어렵다. 공정경제는 더는 반(反)대기업과 엮여선 안된다. 대기업 자체는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