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고속버스 등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예산 요구 전액 삭감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신촌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유모(23ㆍ여) 씨는 최근 버스를 기다리던 중 ‘보기 드문 광경’을 접했다. 정류장에 멈춰 선 저상버스 뒷문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리프트가 내려온 것이다. 유 씨는 “오랫동안 저상버스를 이용했지만 실제로 장애인이 탑승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고령자와 영ㆍ유아 동반자를 비롯해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한 이른바 ‘교통약자’를 위해 도입된 저상버스. 그러나 정작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용률은 턱없이 낮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에 따르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저상버스 이용률은 1% 미만이다. 한 시내버스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일에 1명 꼴로 저상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이처럼 저조한 이용률이 인프라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7485대의 버스 가운데 약 30%인 2258대가 저상버스지만,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보급률은 반토막이 난다. 지난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이 일반 버스 대비 16.4%에 불과하다.
노선마다 저상버스 보유율이 달라 버스 대기 시간이 들쭉 날쭉하다는 것도 문제다. 버스를 놓쳤을 때 다음에 올 버스가 반드시 저상버스라고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모든 노선에 저상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경사나 과속방지턱이 높은 곳처럼 도로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곳에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375개 노선 중 147개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없다. 저상버스를 타도 환승구간에 갈아탈 버스가 없으면 중간에 발이 묶이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택시를 잡으면 될 것 같지만, 이에 대해 박현(40) 서울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 콜택시는 전화로 미리 불러야 되기 때문에 그럴 거면 아예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게 낫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저상버스 운행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원할 때 버스정류장에 가 버스 종류에 상관없이 원하는 버스를 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장애인들이 그런 불편을 겪는 걸 당연하다고 치부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 놓지 않고 탑승자가 별로 없다고 하는 건 원천적으로 바리케이트 쳐놓고 이용률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저상버스 보급확대는 물론 현재 저상버스와 경사로가 맞지 않아 휠체어의 승하차가 불편한 버스정류장 등 산적한 문제들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토부는 내년에 고속ㆍ시외버스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16억원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이를 전액 삭감했다. 현재 일반철도와 고속철도, 시내버스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차할 수 있지만 고속ㆍ시외버스에는 전동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