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기부천사 박명윤씨
심장병 수술 기금 등 3억 기부
25년간 유니세프 한국사무소 근무
현재도 아동청소년 분야서 활동
“기부는 쓰고 남는 돈을 하는게 아니에요. 기부할 돈을 미리 떼어놓고 절약하면서 생활하는게 기부죠.”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명윤(80) 씨에게는 인터뷰 내내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환갑, 칠순 등 인생의 주요 기점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1000만원을 기부한 박 씨는 올해도 80세 생일을 맞아 사무실을 찾았다. 박 씨가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니세프 등 여러 기관에 기부한 금액은 3억원에 이른다. 박 씨는 현재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다. 기부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별 거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면 된 것”이라며 “90세 때도 살아있다면 당연히 또 기부해야죠”라고 말했다.
박 씨는 1965년부터 1989년까지 25년 동안 유니세프 한국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유엔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되기까지의 한국의 발전사를 그는 오롯이 목격한 셈이다. 사무소에서 보건과 영양 사업을 담당했다는 박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 땐 아동이나 청소년 인권이란 개념도 없었어요. 당장 먹고 사는게 문제였죠. 불과 50년 만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정말 빨리 변했네요”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도 박 씨는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상임고문과 한국청소년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씨가 1000만원이 넘는 고액 기부를 시작한 건 20년 전부터다. 1995년 정년퇴임을 5년 앞뒀던 그는 기부를 목적으로 월급에서 200만원씩 떼서 적금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1억원은 서울대 연구비 장학기금과 유니세프 등에 기부됐다. 박 씨는 “20년 동안 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120명에 달한다”며 “그 중 한 명이 현재 서울대 교수가 됐다. 그런 모습에 흐뭇함과 보람을 느끼다보니 지금까지 기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시작으로 박 씨는 심장병 어린이 수술지원을 위한 연세대 의료기금, 명지대 ‘청소년지도장학회’ 등에 주기적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는 월 100만원씩 모아 기부금을 마련했다.
박 씨는 기부란 돈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기부는 쓸 돈 다 쓰고 남는 것을 하는 게 아니에요. 기부할 돈을 미리 떼놓고 나머지로 생활하는 것이 기부지. 그런 기부문화가 한국에도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기부의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가장 먼저 “죽을 때 돈 가져 가나요”라고 되물었다. 박 씨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며 “사람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지상정인데 돈은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 되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게 기부의 진수에요, 진수”라고 말했다.
박 씨는 현재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치료에 들어간다. 죽음에 대해 늘 대비해왔다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죽을 때까지 기부하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년에 ‘밥퍼나눔운동본부’에 100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어린이 심장병 수술지원 의료기금에도 5000만원을 더 기부하려고 해요. 제가 만약 90세 때도 살아있다면 또 유니세프에 기부하러 와야죠.”
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