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보이스피싱 ‘그 놈 목소리’의 말솜씨는 전문가 같았다. 흔들림 없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문 용어를 술술 읊었다. 그래도 어딘가 어설프겠지 하는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 14일 기자는 ‘치안 1번가 사이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간첩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 8월 20일 개발한 이 프로그램에선 2016년~2017년 사이 실제 발생했던 보이스피싱 사건들의 실제 녹취록이 제공된다. 사용자는 성별, 나이, 직업을 입력하면 통계에 따라 위험성이 큰 보이스피싱 유형을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정보를 입력하니 화면 모니터의 휴대폰 모양의 영상에서 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이혜나 수사관’이었다. 그는 “본사건 조사는 법원 증거 제출용이고 녹취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이나 본인께서 아는 내용을 은닉하게 되면 본인은 이 사건과 무관하게 위증과 공무집행방해죄로 가중처벌 될 수 있으시고 민형사상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무미건조하지만 기계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업무에 지친 검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 ‘위증죄’, ‘가중처벌’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한번에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요구하지 않았다. 먼저 가장 확인하기 쉬운 생년월일을 묻고 이름을 확인했다.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냥 끊거나 개인정보를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속으로 생년월일과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본인은 김성오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물을 때는 “아닌데요. 왜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는 그럴싸한 범죄 상황을 꾸며냈다. ‘네이버 중고나라카페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중고거래 한번 해본 적 없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얕은 함정이다.

20대, 남자, 대학생으로 설정해보니 카카오 대화창이 떴다. 친한 친구를 가장한 보이스피싱범과의 카톡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친한 친구가 “뭐해? 안바쁘면 부탁 좀” 친근한 말투로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문화상품권 구매 부탁을 받아놓고 돈을 받았는데 사지 못하고 있다”며 대신 좀 구매해달라고 했다. 이는 지인을 사칭해 문화상품권 구매를 부탁한 후 온라인상에서 상품권을 사용하려고 핀(PIN) 번호를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정세희 기자/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