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 北대사 “한반도 긴장, 美 대북 적대정책에서 기인”
-9분 연설…대미비판 수위 조절 반면 대남비판 수위 높여
-“강한 힘 가질 때 진정한 평화”…핵개발 정당화 여지 남겨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북한은 유엔총회 무대에서 미국과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에게 기회냐, 위기냐 선택을 촉구하며 공을 넘겼다. 작년과 달리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다. 또 미국을 향해서는 비판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반면 한국에는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전가하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30일(현지시간)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진 제74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조미(북미)협상이 기회의 창으로 되는가, 아니면 위기를 재촉하는 계기로 되는가는 미국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사는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공고히 하고 발전을 이룩하는 관건은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역사적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에서 합의·채택된 조미공동성명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미공동성명이 채택된지 1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조미관계가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조선반도정세가 긴장격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대북) 적대시정책에 매달리면서 정치·군사적 도발행위들을 일삼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김 대사는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새로운 계산법’을 촉구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지켜보겠다고 밝힌 것을 환기한 뒤 “우리는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가질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 보고 미 측과 마주앉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를 표시했다”고 해 북미 실무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김 대사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비판하면서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하기는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나름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취했다. 북미 간 실무협상 재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대사의 연설이 통상 회원국별로 15분가량 주어지는 데 못미치는 9분 남짓에 그친 것도 협상을 앞두고 불필요한 메시지를 빼겠다는 셈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대사는 한국을 겨냥해서는 “불과 한해 전 북과 남, 온겨레와 국제사회를 크게 격동시킨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은 오늘 이행단계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면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돌아앉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에서 기인한다”며 비판 강도를 높였다. 김 대사는 특히 한국의 최신 무기체계 도입과 한미 연합군상연습이 “판문점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도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 대사가 연설에서 비핵화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은 대목도 주목된다. 작년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의 신뢰있는 조치를 전제하기는 했지만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공화국의 의지는 확고부동’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대사는 올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주권 존중과 주권평등의 원칙이 무참히 유린되는 현실은 국가들이 자기들의 강한 힘을 가질 때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이룰 수 있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며 오히려 핵개발을 정당화하는 듯한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