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웨스팅하우스사에 기술이전 받으며 엘리베이터 업계에 첫 발
- 창사 3년만에 전 기종 걸쳐 기술 국산화 성공…2007년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 개발
- 전 세계 51개국에서도 기술력 인정…2018년 해외수주액, 전년比 28.8%↑
- 국내 소비자들 ‘메이드인 코리아’ 불신은 아쉬운 점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국내 기업들의 기술 독립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일찌감치 100% 기술 자립 이룬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가 현대엘리베이터다. 현대건설의 작은 사업부에서 시작해 1984년 문을 연 현대엘리베이터는 불과 20년여만에 순수 국내 기술로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960~1970년대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공사를 수주하던 현대건설이 엘리베이터 납기 및 단가 등 여러 애로사항에 봉착하면서 1982년 사업부로 발족됐다. 당시 국내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이미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게 됐고, 1984년 웨스팅하우스와 합작 법인 형태로 거듭나게 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해외 수주가 적지 않았던 현대건설과의 협업을 고려해 법인 설립부터 해외 시장 개척을 염두에 뒀다. 고도의 기술 확보가 중요한 과제였던 만큼 기술 및 부품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다. 법인 설립과 동시에 기술연구소를 세워 매년 5억원 이상의 개발비용을 별도로 투자했다. 그 결과 3년 만인 1987년 엘리베이터 전 기종에 걸쳐 대부분의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1989년 웨스팅하우스가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스위스 업체인 쉰들러에 매각, 제휴관계를 정산했다. 당시에는 수도권 곳곳에 동시다발로 신도시 조성공사가 추진되면서 엘리베이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였다. 대응방안을 찾던 현대엘리베이터는 완전한 기술자립을 실현키로 했다.
1990년 기술종속관계에서 탈피해 자체 기술만으로 개발한 분속 60~105m 중·고속 마이크로프로세서 엘리베이터 ‘수퍼라이드’ 시리즈가 그 결과물이다. 이후에도 현대엘리베이터는 미국 박스코 및 일본 니폰엘리베이터 제조사와 기술 제휴를 체결하는 등 독자기술과 신사업 추진 능력을 축적해나가며 다수의 글로벌 인증기관으로부터 각종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해 1985년 12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2371억원으로 끌어올렸고, 이같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2007년 시장점유율 29%를 점하며 국내 승강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김병효 현대엘리베이터 부사장은 “엘리베이터는 ‘속도의 산업’이고, ‘기술자립’은 곧 이 속도를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며 “힘이 들더라도 끈질기게 기술개발에 투자해 기술자립을 이루고, 이를 토대로 타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낸 것이 국내 1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현대엘리베이터는 2007년 9월 기술개발 T/F팀을 발족한지 2년 9개월만에 기존 분속 1010m를 뛰어넘는 분속 1080m의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 및 분속 600m의 더블데크 엘리베이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기술력은 전 세계 51개국에서도 인정받아 지난해 전년대비 해외수주액이 28.8%나 증가했다. 말레이시아 법인과 터키 법인도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 엘리베이터 수요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승강기 시장, 중국에 공력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17년 3월 중국 상하이에 연산 2만5000대 규모의 신공장을 착공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2020년 하반기 신공장 준공되면 초고속 및 중저속 기종 등 총 14대의 엘리베이터를 테스트할 수 있게 된다”며 “신공장의 성공적인 완공을 통해 중국 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의 ‘메이드인 코리아’ 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넘어서야 할 벽이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44%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층 건물 엘리베이터 및 강남지역 건물 수주 실적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일부 초고층 빌딩은 국내 기술, 국내 부품을 사용했다고 입찰 참여조차 제한되기도 했다.
김병효 부사장은 “엘리베이터 업체의 기술력은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얼마나 수주했느냐’에 달려있는데 우리 기술을 실제로 경험해보지도 않고 국산이란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홀대받는 일이 적지 않다”며 “이같은 인식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동등한 선에서 경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