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화학 등 매년 무역 역조
기계류 분야 적자 132억달러 육박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대일 수입의존도가 20년 사이 20%에서 10%대로 낮아졌지만, 소재·부품 분야의 의존도는 오히려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무역협회와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별 총수입에서 일본의 비중은 10.2%(546억달러)로 집계됐다. 대일 수입의존도는 2000년 19.8%, 2010년 16.1%, 지난해 10.2%까지 하락했다.
수출도 유사한 추이를 보인다. 대일 수출의존도는 지난 2000년 11.9%(205억달러)에 이르렀지만 2010년 6.0%(282억달러), 2018년 5.1%(306억달러)로 크게 낮아졌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처럼 대일 무역의존도는 낮아졌다. 하지만 경쟁력 차이는 무역상품 구조에서 드러났다. 일본 제품의 품질이 가격의 불리함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계류를 비롯해 전기전자, 화학공업, 철강금속 등은 매년 대일 적자를 기록 중이다. 광산품과 농림수산품, 섬유제품 등 일부 상품만 대일 흑자를 유지 중이다. 특히 자본재와 부품·소재 분야에서 역조 폭이 컸다.
이 중에서도 기계류는 131억7400만달러의 최대 무역 역조가 발생하는 산업이다. 대일 수입 규모(167억1500만달러)가 대일 수출 규모(51억1300만달러)를 크게 앞섰다. 대일 경쟁력지수(무역특화지수)를 보면 무려 -53.1을 기록하는 분야다. 2000년 -0.74에서 되려 악화됐다. 무역특화지수는 해당 품목의 순수출액이 같은 품목의 전체 교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지수가 -100에 가까울 수록 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전자전기 제품의 대일 경쟁력지수는 지난 2000년 -0.2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2.5까지 추락했다. 대일 무역 규모가 가장 큰 반도체의 경쟁력지수는 2000년 -15.1%에서 지난해 -57.0%로 크게 악화됐다.
‘수입 의존-수출 확대’ 성장 구조가 굳어진 탓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주로 소재 및 부품, 제조용 장비 등을 수입해 반도체, OLED, 화학 등 중간재와 자본재를 만들었다. 이를 중국과 러시아 등에 수출했다. 이들은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중간재와 자본재를 조립, 가공해서 최종재를 생산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전체 무역의존도는 개선되고 있지만 소재 분야는 기초과학에 가까워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며 “그렇다고 이같은 대일 무역적자 구조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만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시장과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 구조 아래선 당장 ‘소재부품 국산화’를 이뤄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 소재부품을 개발·생산하려고 하면 일본 기업이 알아채고 수출 자체를 하지 않기도 한다”며 “또 불화수소와 같은 특정 소재를 수출하며 다른 주요 제품을 끼워팔기 때문에 여태껏 국산화가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기술력을 키워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실장은 ”기술 개발을 통해 내수 경제를 키워가는 동시에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피해야만 경제 타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