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상식에 반한 조치” 유감 표명에 일본 냉담한 반응…외교부 속앓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관련해 초치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을 두고 일본정부가 취한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치에 한국과 사전 협의가 없었던 이유도 “인내의 한계에 왔기 때문”이라며 냉소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한 외교 채널 역시 원활치 않아 우리 외교부는 속앓이 중이다.

아사히 신문 등 현지 언론은 1일자 오후 늦게 낸 보도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제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다”며 이번 조치가 한국 정부에 어떤 설명도 없이 취해진 사실과 그 배경을 전했다. 아사히 보도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1일 오후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일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뒤이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외메시지를 통해 “경제보복이며 상식에 반한 조치”라고 강한 유감을 표한 이후에 나왔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는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아무리 기다려도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 정도 방안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낙담이 퍼졌다. 이는 지난 6월 19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해 한국 외교부가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 피해자에 위자료를 주자고 제안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때 한국 정부는 해당 제안을 일본이 받는다면 일본 정부가 요청했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3조 1항 협의 절차(한일 양국 외교채널을 통한 분쟁해결)를 수용하겠다고 덧붙인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즉각 이를 거부했다. 청구권 협정 3조 3항에 의거, 제3국 중재위 구성을 요구했다.

청구권 협정 3조 1항이 아닌 3항의 마지막 절차로 가자는 입장이었다. ‘배상 하기 싫으니 다른나라 판단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제안을 일본이 거부하는 국면이 지속됐지만 아사히는 “일본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한국 정부의 대응을 바랐지만 답이 없었다”며 자국 입장을 두둔했다. ‘경제보복’ 조치 주무부서인 일본 경제산업성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G20 정상 회의가 한국의 대응을 기다리는 기간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 내 잡음도 들리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외무성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측 조치에 대해 한국의 비판이 거세지면 논의의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를 우리 외교부에도 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2일 “(1일 있었던 조세영 외교 1차관 항의 이후) 일본 측의 특별한 답신이나 대응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일본 반도체 품목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하며 “강제징용 건에 대한 조치가 아니다”면서도 “한일 간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밝힌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정 조치를 취하며 일본 측이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콕 집어 거론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일 발표에서 언급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조만간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 스마트폰 및 TV에 쓰이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3개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이다. 앞으로는 이들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90일가량 걸리는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윤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