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서 임면, 법정임기 2년 자진사퇴 후 재배치...무력화 법취지 독립성 유지 유명무실 전문가 “강제조항 등 조치를” [헤럴드경제=배두헌ㆍ김현일 기자] 금융회사 준법감시인이 임기 중 다른 자리로 옮겨가는 사례가 잇따르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업계의 허술한 내부통제 인식을 지적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정의 이유 가운데 하나인 ‘내부통제 강화’ 취지를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다.
22일 헤럴드경제 취재 결과 준법감시인이 임기 중 교체된 사례는 최근 확인된 KB금융지주, KB국민카드, 신한금융지주에만 그치지 않았다. 증권업계에서도 과거 준법감시인을 쉽게 교체하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준법감시인 임기 보장 등을 명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지난 2016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나금융투자는 2017년 1월 당시 임기가 8개월 밖에 안 지난 변재연 준법감시인(상무)을 상품전략본부장으로 발령냈다. 역시 ‘자진사퇴 후 타 보직 발령’ 방식이었다.
하나금투 측은 심지어 “애초 선임할 때부터 연말 정기 인사 때 교체를 염두에 두고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16~2017년 단 1년 사이 준법감시인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통합법인 출범을 앞둔 2016년 10월 노재청 이사가 준법감시인에 선임됐으나 8개월 만인 이듬해 7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유로에셋투자자문의 옵션상품 손실로 관련 소송이 잇따르자 회사 측이 내부통제 담당 임직원들의 책임을 물어 교체한 것이다.
노 이사에 이어 준법감시인을 맡은 백상옥 이사도 오래가지 못했다. 선임 4개월 만인 2017년 11월 최춘구 이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미래에셋대우 측은 “백 이사의 준법감시인 선임은 임시 조치로, 이후 법무팀장 등의 경력이 있는 최 이사를 준법감시인으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인을 10년 가까이 맡고있는 한 증권사 임원은 “조직 내 실질적 권한과 지위가 확보되는 게 중요한데, 정년이 2년도 남지 않은 임원을 준법감시인에 앉혀 교체가 잦은 경우도 있고, 금융사고 등 이슈가 있을 때 명백한 귀책이 없는데도 내부통제 소홀이란 차원에서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준법감시인 임기 보장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았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준법감시인을 이사회에서 임면하고 해임토록 돼있다.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운 건 임기를 보장하라는 취지”라며 “법에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해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면 임기 보장이 조금 더 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내부통제 혁신 TF에 참여했던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진사퇴로 인한 준법감시인 교체 시라도 그 사유를 외부에 공시토록 하면 이것이 합리적이다 아니다를 시장에서 평가할 것”이라면서 “보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내부통제에 대한 CEO들의 의지가 강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실패로 사고가 나면 천문학적 과징금 등을 부담해야 하지만 사법체계가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CEO들의 내부통제 관심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