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안 전제 논의 무의미 지적

지난 16일 열린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토론회에 경영계와 노동계 인사가 모두 불참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개편안을 전제로 한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노동경제 전문가들도 학문적 성향에 관계없이 정부안을 설익었다고 평가하고, 개편 시기를 늦추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안은 방법론만을 다루고 있어 지엽적인 논의 밖에 나올 수 없다”며 “개편안을 내세우기 전에 최저임금 자체에 대한 새 패러다임이 제시됐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1988년으로 30년 사이 제조업 일자리 비중이 급감했고, 노동력이 고령화됐다. 또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도 극심해졌고, 영세 자영업자 수가 급증했다”며 “노동시장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최저임금의 취지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가 문제의 본질이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문제인식에서 출발해 최저임금의 규모ㆍ업종별 차등적용도 논의 대상에 포함하는 등 제도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대 노총과 경영계가 모두 반대하는 상황에서 국회 통과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부터 새 결정체계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1월 중 정부안을 확정하고, 2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통과가 4월~5월로 늦어진다면 2020년 최저임금의 고시 시한을 8월에서 11월로 연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성급하고 일방적인 추진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는 “탄력적 근로, 근로시간 단축부터 최저임금 개편안까지 절차에 맞지 않고 일방적인 일처리가 잦다”며 “테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했다지만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소외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갑자기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도 “결정체계 개편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서두를 것이 전혀 없다. 늦어진다고 해도 불과 1년 미뤄지는 것 뿐이다”고 말했다.

다만 속도조절을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면 찬성한다는 이견도 있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보 성향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면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며 “속도조절을 통해 갈등을 줄인다는 측면에선 연내 개편을 찬성한다”고 말했다.

정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