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측 증거 부동의하면 현직 판사들 증인 출석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종헌(59ㆍ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이 시작된다. 임 전 차장은 직권남용 등 범죄 성립을 부인하고 있어 그와 함께 일했던 현직 판사들이 대거 증인으로 나설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 윤종섭)는 10일 오후 2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검찰의 공소 요지와 임 전 차장의 입장을 확인한 뒤 심리 진행 방식, 증인 및 증거 채택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할 의무는 없어 임 전 차장는 이날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검찰과 임 전 차장 측은 다수의 증인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따랐던 판사들의 이름이 다수 거론됐다. 임 전 차장이 2015년 2월경 정다주 당시 심의관에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항소심 결과에 따른 예상 시나리오’ 작성을 지시했다는 식이다. 행정처 심의관들이 작성한 문건과 함께 검찰 진술조서가 증거자료로 포함됐다. 임 전 차장 측은 ‘기억이 안난다’, ‘심의관들이 알아서 작성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 측이 이들 조서 중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에 대해선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검찰은 진술자인 판사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증거의 내용과 신빙성에 대해 다퉈야 한다. 검찰에서 조사받은 행정처 간부 중 상당수가 임 전 차장에게 불리한 정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임 전 차장과 후배 판사들 사이 진실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재판부가 증인채택 여부, 증거조사 방법, 쟁점 등 최종 결정한 후엔 정식 공판을 시작한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적극 반박하면서 박병대(61ㆍ12기)ㆍ고영한(63ㆍ11기) 전 대법관의 공모 여부를 진술할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그의 공소장에 양승태(70·2기) 전 대법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 임 전 차장이 공모관계에 있다고 적었다. 재판 개입 등 행위들이 ‘양승태-박병대ㆍ고영한-임종헌’으로 이어지는 상하 명령체계를 통해 이뤄졌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 7일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공모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며 반발할 경우 태도를 바꿔 법정에서 윗선의 지시나 관여 여부에 대해 입을 열 가능성도 있다.
선고는 기소 시점부터 6개월인 구속기한을 고려하면 내년 5월쯤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심리할 사안이 방대하면 재판부는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기한을 6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심리를 맡은 형사36부는 지난달 법원이 공정성 시비를 의식해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는 법관 9명을 모아 신설한 3개 합의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