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이름, 차량번호, 초소번호 등 암기 압박 -끼니도 거르고 잠도 자지 못한 채 암기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군대에서 암기 압박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가 22년 만에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A씨의 유족이 서울지방보훈청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요건 비해당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자살이 군 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는 신체적 피로가 누적돼 있는 상태서 경계근무에 투입됐다”며 “선임병들은 암기상태를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A씨에게 끊임없이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이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1996년 2월 입대한 A씨는 그 해 4월 공군 헌병대에 배치됐다. 5일 뒤 고가초소에서 홀로 경계근무를 서던 중 총기피탈 방지용 끈으로 목을 메 자살했다. A씨는 약 200명에 달하는 지휘관ㆍ참모의 성명, 차량번호 등을 암기하는 데 상당한 부당감을 느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선임병들은 A씨가 휴식 또는 경계 중인 시간에도 수시로 전화를 해 암기상태를 점검, 외우지 못할 경우 심하게 질책했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은 물론 심야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암기를 하는 등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유족은 지난해 11월 A씨가 군 생활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며 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신청을 했다. 하지만 보훈청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고, 자대배치를 받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살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유족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