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 납치범 ‘인질값 올리기’ 막기 위해 설정 -靑 “외신보도, 엠바고 해제 기준” -해적에 ‘한국인 납치하면 목표달성’ 인식 줄 수 있어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청와대는 한국인 3명이 탄 어선의 아프리카 가나 인근 해역 피랍사건의 엠바고(보도 유예)를 해제한 기준이 ‘외신보도 시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 피랍사건에 대한 엠바고는 납치범의 몸값요구 및 구출작전 등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정된다. 외교부 내부에서 ‘외신보도도 인용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언급도 있었던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2일 기자들과 만나 외신보도로 인해 피랍사건의 엠바고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외신보도가 대에서 공개수사로 전환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납치된 분들의 신변 보호가 최우선이라 엠바고를 걸었는데 현지에서 보도가 나왔기 때문에 해제한 것으로, 유괴납치 사건도 보도되면 공개수사로 전환하는 게 상식 아닌가”고도 반문했다.

정부, 우왕좌왕 엠바고 해제기준…靑 “외신보도가 해제 기준”

통상 정부는 피랍사건이 발생하면 그 규모와 상황에 따라 즉각 대외적으로 공개하거나 사건이 해결할 때까지 엠바고를 설정했다. 특히 피랍사건과 관련한 엠바고는 납치범들에게 ‘한국인을 납치하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설정됐다. ‘외신보도’가 엠바고 해제의 기준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사건 발생 즉시 사건이 공개돼 파장이 된 것으로는 2007년 5월 발생한 마부노 1, 2호 사건이 있다. 정부는 당초 “해적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돈을 줄 수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여론의 비난과 함께 100만 달러(약 11억 원)가 약간 넘는 금액에 선원을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마부노 1,2호 선원들은 납치 발생 174일이 지난 시점에 전원 석방됐다.

이후 같은해 10월 골든노리호(한국인 2명)과 2008년 9월 브라이트루비호(한국인 8명), 2008년 11월 켐스타비너스호(한국인 5명)가 피랍됐고, 정부의 몸값 지불로 모두 석방됐다. 2010년 11월 납치 216일 만에 풀려난 30만t급 유조선 삼호드림호(한국인 선원 5명)는 삼호해운 측이 몸값으로 950만 달러(약 106억 원)의 거액을 건네는 조건으로 석방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몇 년간 건넨 몸값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적들의 한국인 납치가 빗발치고, 요구하는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정부는 삼호 주얼리호 피랍사건을 계기로 구출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해적에 납치됐던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은 당시 ‘아덴만 여명작전’을 펼친 청해부대에 의해 전원 구출됐다. 구출작전은 삼호주얼리호의 피랍소식이 공개된 지 엿새 만에 이뤄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2일 오전 9시 기준 우리 피랍인 3명의 소재지는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의 가나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마린 711호’가 해적 추정세력에 납치됐다. 9명으로 구성된 납치 세력은 마린 711호를 납치하기 전 그리스 선적 탱커(유조선) 두 척을 탈취하려다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억류한 그리스인 2명을 마린 711호에 함께 태워 나이지리아 해역쪽으로 이동했다. 납치세력은 나이지리아 해군의 경고에 베넹과 나이지리아 경계 해역에서 한국인 3명과 그리스인 1명, 가나인 1명 등을 자신들의 스피드보트(고속 모터보트)에 태운 뒤 대양 방향으로 도주했다.

외신보도가 엠바고 해제의 기준이 됐다면, 정부는 지난달 28~29일 사이 엠바고를 해제했어야 한다. 가나매체인 시티프온라인(citifonline)과 미국 해운전문매체 마리타임 이그제큐티브(maritime-executive)는 현지시간 29일 한국인의 피랍사실을 보도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8일인 시점이다. 정부는 엠바고 해제 이유로 ▶ 외신보도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음 ▶현재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진행 중임 ▶피랍자 가족들과 관련 협의를 마침 등 3가지를 꼽았지만, 정부가 엠바고를 해제할 때까지 관련 보도는 10건 안팎이었다.

지난달 31일 납치된 한국인들이 나이지리아 남부 바이엘사주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가 나오자, 정부는 이날 오후 엠바고 해제를 결정했다.

엠바고 해제와 함께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돌아온 직후(지난달 28일)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을 피랍 해역으로 급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오만 해역에 머물던 문무대왕함은 이달 16일은 돼야 사건 해역에 도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