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서양음악의 경계 허물고 새 길 내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우리시대의 예인, 한국을 대표하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31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2세.황 교수는 지난해 12월 뇌졸중 치료를 받은 뒤 합병증으로 폐렴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전통음악인 가야금 연주는 황병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작음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데 그의 음악사적 의미가 크다. 그는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전통적인 연주법이나 음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경지를 구축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별세

1936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고인과 가야금의 인연은 1952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부산 피난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중학교 2학년이던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국악 콩쿠르 1등을, 서울대 법대 3학년에 KBS주최 전국 국악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러한 수상이 바로 가야금 인생으로 전업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명동극장 지배인, 출판사 사장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던 1974년 이화여대 한국음악과가 생기면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1962년 서정주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곡 ‘국화 옆에서’다.

이후 가야금 독주곡 ‘숲’을 비롯 신라시대 무용음악을 상상하며 작곡한 ‘침향무’,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페르시아 유리잔을 모티브로 쓴 ‘비단길’ 등 다양한 창작곡을 발표했다. 특히 1975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미궁’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미궁’은 첼로 활과 술대(거문고 연주막대) 등으로 가야금을 두드리듯 연주하고 무용인 홍신자의 절규하는 목소리를 덧입은 파격 형식의 곡이다.

2014년 ‘정남희제(制) 황병기류(流) 가야금 산조’ 음반을 내고, 지난해 9월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가곡(歌曲) 콘서트 ‘황병기 가곡의 밤’, 같은 달 롯데콘서트홀에서 ‘국악시리즈 II - 국립국악관현악단’을 펼치는 등 말년까지 활발한 연주 활동을 보였다.

2001년 정년퇴임 후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2006~2011),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국악상, 방일영국악상, 호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대상, 만해문예대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소설가 한말숙, 아들 준묵ㆍ원묵씨, 딸 혜경ㆍ수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장지 용인천주교묘원. 발인은 2월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