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ㆍ美 호응에 명운 걸린 파격 카드 -자칫 코리아 패싱 심화 자충수 될 수도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승부수냐 자충수냐. 북한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카드를 꺼냈다. 당장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걸렸고, 크게는 북핵ㆍ한반도 위기의 해법이 달렸다. 북한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초석이란 점에선 ‘승부수’이지만, 자칫 우리 정부의 외교 입지를 좁히는 ‘자충수’로 전락할 수 있다. 극과 극의 파격 카드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ㆍ패럴림픽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제안을 미국 정부에 제안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는 중국의 대북정책 외교 전략인 쌍중단(雙中斷)과 유사하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모두 중단하는 걸 의미한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한시적으로 우선 쌍중단을 적용해보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제안이 나오기까진 우선 우리 정부가 처한 현실적 고민이 있다.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건 북한의 올림픽 참가이며, 문 대통령은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참가에 한중 양국이 협력하겠다고 합의했었다. 문 대통령의 ‘쌍중단’급 제안은 북한의 평창행을 위한 유인책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통상 3월에 열리며, 평창 올림픽 및 패럴림픽(2월 9일~3월 18일) 기간과 겹친다.
나아가 이번 제안이 성사되면 우리 정부의 외교 위상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 정부가 주도하게 되면, 소위 ‘운전자론‘도 탄력 받게 된다.
특히나 이번 제안은 중국의 쌍중단론을 미국에 전달하는,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미국 가치와 상반된 세상을 만들려 하는 경쟁국”이라 표현하는 등 신(新)냉전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제안은 이 같은 한반도 기류 속에 우리 정부가 균형자이자 메신저로 자리 잡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선 이번 제안이 문 대통령의 승부수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현재로선 승부수가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은 사실상 미국에 결정권이 있다. 한미동맹 관계를 감안할 때, 우리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난 미국 측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 측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을 내놓기 전까지 미국과 얼마나 치밀한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자칫, 미국이 이후 문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거나 온도 차를 보이면 오히려 한미 간 균열만 불거질 소지가 있다.
더 큰 관건은 북한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역으로 추가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수차례 이산가족 상봉ㆍ남북 군사회담 등을 북한에 공개 제안했으나, 북한은 거부 의사조차 밝히지 않고서 이를 무시해왔다. 만약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면, 그 이후론 ‘쌍중단’ 식의 해법은 아예 다신 활용 불가능한 카드가 된다. 대화 국면을 꾀하려다 오히려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결국, 키는 북한의 손에 달렸다. 문 대통령도 인터뷰에서 “이 모든 상황이 가능할 것인지는 북한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