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이른바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첫 법원 판단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는 27일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명단에 오른 예술인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등)를 받고 있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6명의 1심 판결을 선고한다. 이들 피고인들의 유ㆍ무죄가 결정되면,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공범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71일만에 마무리되는 ‘블랙리스트’ 재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는 27일 오후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등)를 받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57) 전 교육문화수석, 김소영(50) 전 문체비서관의 1심 선고 공판을 연다. 주범으로 지목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재판에 넘겨진지 171일 만이다. 그동안 준비기일을 포함해 총 39회 공판이 열렸고 58명 증인이 법정에 나와 진술했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5)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1심 판결도 선고한다. 이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진행 상황을 김 전 실장에 보고한 ‘실행책’으로 꼽힌다.
▶블랙리스트 작성ㆍ활용, 범죄일까 정책일까? =이날 관전 포인트는 재판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활용한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판단할지 여부다. 특검팀과 피고인 측은 그동안 재판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활용한 것이 죄가 되는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특검팀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범죄라고 주장했고, 김 전 실장 등은 좌ㆍ우파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균형있게 바로잡기 위한 정부 정책이었다고 맞섰다. 특검팀은 명단에 오른 예술인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해 사실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봤지만, 김 전 실장 등은 보조금을 주지 않았을 뿐 예술활동을 금지한 게 아니라서 예술의 자유가 침해되지는 않는다고 항변했다.
▶블랙리스트 작성ㆍ활용, 책임은 누구까지?=재판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활용한 행위를 직권남용 범죄로 판단하더라도,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지 문제가 남아있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며 직접 챙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이 지난 2013년 9월부터 청와대 비서관들을 모아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예술인과 영화, 도서를 정부 지원에서 배제했다는 게 특검 조사 결과다. 반면 김 전 실장은 지난 2월 28일 열린 첫 공판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재직 도중 블랙리스트에 대해 듣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공범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재판부가 김 전 실장이나 조 전 장관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다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총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과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의 1심 판결문을 박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할 계획이다.
특검은 지난 3일 결심(結審) 공판에서 “헌법이 수호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서로 편을 갈라 국가를 분열시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놓으려 했다”며 피고인 전원에게 실형을 구형(求刑)했다. 김 전 실장에게는 징역 7년, 조 전 장관에게는 징역 6년의 실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범행에 연루돼 기소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에게는 징역 6년,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