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국가 전체가 ‘최순실 게이트’의 블랙홀에 빠져든 가운데 주요 경제지표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위기로 꼽혔던 19년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19년 전의 환란은 갑자기 닥치는 바람에 국민들의 체감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서서히 진행되고 있어 체감도가 떨어질 뿐, 이미 생산과 고용 등 산업현장은 위기에 빠진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야 할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은지 1개월을 넘었다. 대통령이 난국 해결을 위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 이를 다시 국회로 떠넘기면서 국정공백이 장기화하면 경제도 헤어나기 어려운 ‘함정’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활동’ 동향은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전체가 대혼돈에 빠지기 직전의 경제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임에도 이미 산업현장의 ‘실제경기’는 환란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경제의 기둥인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지난달 70.3%로 10월 기준으로 환란 당시인 1998년 이후 18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9월(71.4%)의 제조업 가동률도 같은 달을 기준으로 1998년(68.6%) 환란 이후 최저치였다. 연간으로 보면 작년 가동률(74.3%)이 이미 1998년(67.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얼어붙어 제품을 만들어도 판로가 마땅치 않자 기업들이 환란 때처럼 공장을 닫고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수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감소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 경제개발의 원동력이었던 수출이 2년 연속 줄어드는 것은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사상 처음이다. 환란 때에도 수출은 1998년(-2.8%) 한해 소폭 감소했을 뿐 2년 연속 줄지 않았다.
민간소비는 ‘코리아 세일페스타’ 등 인위적인 소비진작책이 실시되면 ‘빤짝’ 증가했다가 다시 감소하는 패턴을 지속하며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1300조원에 육박하며 사상최대치를 경신한 가계부채가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용지표도 이미 환란 수준에 접근했다.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8.5%에 달해 같은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8.6% 이후 17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잠재적 실업자까지 합하면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는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작년 4분기부터 4분기 연속 0%대(전분기 대비)에 머물고 있다. 연간으로는 작년(2.6%)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후 해외 투자은행(IB)들은 1%대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실종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책 총괄부처이자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부총리 교체 문제와 맞물려 정책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후임 부총리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내정해 현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교체가 확실시됐지만, 정국 혼란 속에 기묘한 동거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경제상황이 환란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경제정책의 작동이 멈춘 상태에서 ‘위기’의 시계는 쉬지 않고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위기가 경제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루속히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