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우리만 아껴 쓰면 뭐 하나...’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는 쓰고, 쓰레기를 하나하나 분리 배출하는 일.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서 작은 불편을 감수하는 흔한 습관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아껴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을 쓰며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전 세계 인구 단 0.1%, 약 800만명에 해당하는 초부유층. 이들이 돈을 쓰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무려 35억명이 배출하는 양을 모두 합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많은 사람이 많이 쓰는 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소비가 많은 게 아니다.
개인 전용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오가고,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거대 요트를 바다에 띄우는 초부유층.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피해를 가난한 사람들이 떠안고 있다는 것. “지구를 우리만 아끼면 뭐하냐”는 자조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전 세계 최상위 1%가 단 1년간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향후 약 190만명의 폭염 관련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막대한 소비와 투자 활동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재난의 격차: 기후위기는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수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최상위 0.1%에 해당하는 약 800만명의 소비 기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총 23억6100만톤으로 추산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소득 하위 44%에 해당하는 약 35억명의 배출량은 23억1200만톤에 그쳤다. 단 800만명이 자신들보다 400배 이상 많은 35억명의 배출량을 넘어선 것.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비가 단순히 쇼핑하거나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소비와 연관 지어 계산한 수치다.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도 다른 계층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옥스팜이 탄소 배출 불평등 자료와 기후변화 영향 분석 모델을 결합한 결과, 지난 1990년 이후 발생한 지구온난화의 약 20%는 전 세계 최상위 1%의 배출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0.1%만 따로 떼어내더라도 약 6.8%에 달했다. 전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1%에 불과하지만, 지구온난화에 기여한 정도는 그 수십 배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극심한 폭염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최상위 0.1%에 속하는 한 사람이 극심한 폭염 발생에 기여한 정도는 전 세계 평균적인 사람과 비교해 약 125배에 달했다. 소득 하위 50%에 속한 사람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약 400배까지 벌어졌다.
실제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죽음’이다. 옥스팜은 전 세계 최상위 1%가 2023년 한 해 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앞으로 약 100년에 걸쳐 190만명에 가까운 폭염 관련 초과 사망을 유발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러한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이다. 옥스팜은 폭염에 따른 초과 사망이 저소득국과 중하위 소득국에 집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이들 국가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폭염이나 홍수와 같은 기후재난은 돈이 많든 적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거나,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부자라고 더 시원한 날씨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에 대비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폭염을 피하기 위해 냉방시설을 이용하거나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홍수 위험이 낮은 지역에 집을 마련하고, 피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거주할 집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후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나 장비에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피해를 복구할 여력이 부족하다 보니, 재난이 지나간 뒤에도 오랫동안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처럼 기후재난에 대한 대응 능력의 차이는 실제 사망자 규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큰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7배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차이가 한 차례의 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다음 재난에 대비할 경제적 여력을 갖추기 더욱 어려워진다. 반복되는 기후재난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심화된 불평등이 다시 재난 피해를 키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산업에 투자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한 재난에서도 돈을 버는 투자자들이 있다. 실제 일부 대형 투자자들은 석유·가스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뿐 아니라, 기후재난으로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 사업에도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실제 옥스팜은 석유·가스 등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산업과 재난 대비·복구 산업에 속한 기업 217곳을 선정하고,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투자 현황을 살펴봤다. 그 결과,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뱅가드는 분석 대상 기업의 무려 92%에 투자하고 있었다.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산업과 그 피해를 복구하는 산업 양쪽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 쉽게 말해,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산업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그 피해를 복구하는 사업에도 투자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옥스팜은 초부유층의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기후재난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부유층과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기후재난에 취약한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난 대응과 복구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이 과도한 이익을 얻는 구조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미타브 베하르 옥스팜 국제본부 사무총장은 “초부유층은 지구에 불을 지른 뒤, 나머지 사람들에게 소화기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며 “그들은 오염으로 돈을 벌고, 재난과 복구 과정에서도 다시 돈을 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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