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오늘부터 한화생명, 현대제철, 롯데쇼핑 등 일부 기업들의 주식 종목명 옆에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꼬리표가 붙는다. 한국거래소가 장기간 저평가 상태에 머물면서도 주가 부양에 소극적이었던 상장사 151곳의 명단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하면서다.
공개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강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투자자들 역시 단순 저평가주를 넘어 실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옥석 가리기’에 분주해지고 있다. 이날 현대제철 등 저PBR 기업에 선정된 일부 기업의 주가는 급등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1일 최근 3년간 PBR이 시장 및 업종별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한 상장사 151곳(코스피 96개사, 코스닥 55개사)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은 이날부터 차기 공표일인 내년 5월4일 전까지 상장공시시스템(KIND)에 게시되며, 각 증권사 MTS와 HTS 종목명 옆에도 ‘저PBR’ 태그가 표출된다. 이름을 공개해 망신을 주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and Shaming)’ 방식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장부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보여준다. 1배를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고평가된 상태이고, 1배 미만이면 보유 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이번 명단에는 시가총액 2조~3조원대의 대기업들도 포함됐다. 국내 증시 상장사 평균 PBR이 1.8배 수준인 데 반해 한화생명(0.27배), 현대제철(0.19배), 롯데쇼핑(0.17배), 이마트(0.15배), 코오롱(0.15배) 등은 극단적인 저평가 상태였다.
이날 이들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현대제철은 11.61% 급등한 2만8850원에 마감됐다. 이외 롯데쇼핑(9.28%), 이마트(7.09%), 코오롱(4.62%), 한화생명(0.73%) 등도 상승 마감했다.
거래소의 이번 조치는 단순히 PBR이 낮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저평가 상태에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소각, 수익성 제고 등 실질적인 주주가치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을 시장에 공개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저PBR 꼬리표를 떼기 위해 밸류업 공시에 적극 나서면서 주주환원 및 자본 효율화 작업이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PBR 산정은 주가와 자본총계의 변화 속에서 이뤄지는데,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향방을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면 결국 분모에 해당하는 자본(순자산)의 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사주 매입·소각 증가 또는 배당 확대 등의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번 명단 공개가 주주환원 확대로 이어질 알짜 저평가주를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통상 저PBR 종목은 보유 자산 대비 주가가 싸 향후 상승 여력이 크다는 기대를 받지만, 수익성 악화로 만년 저평가에 그치는 우려도 공존하기 때문에 실제 행동에 나설 여력이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재모 독립리서치 아리스 연구원은 “아직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장기간 낮은 PBR을 기록하고 있고, 현금·자사주·유휴자산 등 활용 가능한 수단을 충분히 보유한 기업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비핵심자산 매각,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 목표 제시, 지배구조 개편과 같은 행동이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을 사전에 판단하는 것이 이번 정책을 활용한 투자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명단 포함 여부 자체보다 기업들의 후속 밸류업 공시와 맞물린 제도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명단 포함 여부보다 밸류업 공시를 중심으로 투자 대상 기업을 판단할 근거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공시를 한 업체들의 실제 이행이 기대되는 가운데, 장기적으로는 베어허그(거부하기 힘든 조건의 인수 제안)나 의무공개매수 제도 등 함께 추진되는 정책들의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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