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김주애가 있다면, 일본에는 아이코 공주가 있어

김정은 위원장과 장녀 김주애.   [연합]
김정은 위원장과 장녀 김주애. [연합]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장녀 김주애(13세)를 주요 공식 행사에 빈번하게 대동하며 나타나는 등 ‘딸 바보’로 유명하다. 북한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김주애 띄우기에 여념이 없어서 김주애 후계자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한편 일본 천황가에도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는 공주가 있다. 나루히토 천황의 장녀 아이코 공주(24세)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으며, 특히 그녀가 여성 천황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다. 지난 7월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 여성 천황을 용인한다는 의견이 81%, 반대는 16.1%에 불과해 일본 국민은 아이코 공주의 여성 천황 승계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봉건 왕조 색채가 강한 북한과 일본에서 여성이 국민적 주목을 받으며 후계자의 반열에 오른 것은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다.

나루히토 천황과 장녀 아이코 공주.  [출처 : 일본 궁내청]
나루히토 천황과 장녀 아이코 공주. [출처 : 일본 궁내청]

아이코 공주의 천황 대망론에 찬물, 유엔 권고안을 묵살한 황실전범 개정

다카이치 내각은 1947년에 미국 맥아더 사령부의 일본 점령 시절에 강제로 개정한 황실전범을 80년 만에 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번 개정 과정에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기존의 남성 천황 승계 원칙이 바뀌어 여성도 천황 승계가 가능할지였는데 일단 그 기대는 무산되었다.

황실전범 제1장 제1조 황위 계승 조항에 ‘황위는 황통(천황가의 혈통)에 속하는 남계의 남자가 이를 계승한다’는 규정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남계 남자란 부친이 천황가인 남성을 말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아이코 공주는 부친이 천황이지만 여성이므로 황위 계승에서 제외된다. 다만 황족 여성이 천황 및 황족 이외의 남성과 혼인하면 황족 신분을 이탈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아이코 공주가 평민 남성과 결혼하더라도 황족 이탈을 하지 않게 했다. 현재 나루히토 천황의 후계는 남동생 후미히토의 장남 히사히토 왕자(20세)가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번 개정에서 여성 천황의 길이 봉쇄되자 시대착오적인 법률이라며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유엔은 ‘여성차별철폐조약’에 따라서 2024년 일본정부에 대해 “남계 남자만 황위를 계승하는 것은 ‘여성차별철폐조약’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는 일이다”라며 여성에게도 천황이 될 수 있게끔 황실전범의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황실전범 개정은 이런 유엔의 권고를 묵살한 셈이다.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개정 검토에 관여했던 스기우라 세이켄 당시 내각관방 부장관은 이번 황실전범 개정을 단행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다카이치는 생각이 고루하다”고 꼬집었다. 나루히토 천황도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해 이번 개정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개정으로 아이코 공주의 천황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안정적인 황위 계승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과 관련하여 계속 검토한다”라는 내용이 이번 법률의 부대결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역사상 8명의 여성 천황 사례 있어

일본의 여성 천황은 고대 아스카시대의 스이코 천황에서 시작하여 사이메이, 지토, 나라시대의 겐메이, 겐쇼, 고켄 천황 그리고 근세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메이쇼, 고사쿠라마치 천황에 이르기까지 8명 10대에 이른다. 특히 지토 천황은 남편 덴무천황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는 강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오늘날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의 큰 업적을 남긴 천황으로 기록된다.

일본 천황가     [출처 : 야후재팬 화상]
일본 천황가 [출처 : 야후재팬 화상]

황실전범 개정 강행 배후에 있는 일본회의와 신도정치연맹

이번에 자민당의 다카이치 정권이 국민 여론과 현 천황가의 의사를 무시하고 황실전범 개정을 강행한 배후에는 일본의 신도 세력에 기반을 둔 반미 성향의 극우 보수단체 일본회의가 존재한다. 1974년에 창립, 메이지신궁회관에 본부 사무실을 둔 이 단체는 태평양전쟁 책임을 부인하며 여성 천황 반대, 남성 천황제 고수, 구황족 신분 복귀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 평화헌법 개정, 부부별성제도 저지, 자학적 역사관 배격 등을 내세우며 일본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계에서는 초당파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를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간담회 소속 의원의 상당수가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간담회’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현 일본 총리를 비롯해 아소 타로, 스가 요시히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등 고 아베 전 총리 계열 정치 인맥이 망라되어 일본회의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지난 총선에서 의회 개헌선 2/3를 확보한 여세를 몰아 황실전범 개정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다음 행보는 평화헌법 개정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AI 시대의 격변기를 맞아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며 양성평등이 대세인 이 시기에,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은 1인당 GDP에서 한국과 대만에 추월당한 데 이어 전체 GDP에서도 독일에 이어 인도에도 뒤처지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는 고루한 남성 중심 사고에 젖어 과거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 보수세력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점에서 일본 여성 천황의 출현 여부는 일본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anju101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