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액운을 쫓기 위한 등이 축제로
불빛 위에 피어난 무사·영웅의 향연
석축 밑으로 통째로 내려온 히로사키城
2만㎡ 저택에 깃든 실업가의 정원 미학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일본 아오모리에선 험상궂은 표정의 영웅들이 빛의 축제에서 선두에 선다.
대나무와 철사로 뼈대를 세우고 종이를 겹겹이 덧바른 뒤, 먹선과 붉고 푸른 안료로 숨을 불어넣은 형상들. 농번기의 나른한 졸음과 묵은 액운을 쫓기 위해 밝혔던 등불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빛의 축제로 자라났다. 이제 도시는 축제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길고 혹독한 북국의 겨울을 견뎌낼 뜨거운 열기를 길어 올린다.
액운과 잠을 쫓던 맹렬한 불빛
매년 8월 초, 아오모리의 여름밤은 ‘네부타’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네부타는 ‘졸리다(네무타이)’라는 지역 방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농사일을 방해하는 졸음과 액운을 쫓기 위해 밝히던 대형 종이 인형 등(燈)을 가리키며, 축제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해마다 축제 기간에는 거대한 네부타 수십 대가 거리를 메우고, “랏세라, 랏세라” 하는 추임새가 북·피리·징 소리와 뒤섞여 거리를 울린다. 한 해 벼농사의 풍흉이 갈리는 길목, 무더위와 나태를 떨쳐내고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빌던 기원은 이제 도시의 여름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화 축제로 만개했다.
1980년 일본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축제의 정점인 네부타는 목재와 철사로 입체 골조를 잡은 뒤 한지를 바르고, 먹과 안료로 일본 전국시대 무장이나 중국 고전 삼국지의 영웅들, 가부키의 장면 등을 그려 넣어 완성한다.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축제인 탓에 행사가 열리는 기간에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외지인이 온전히 즐기기란 쉽지 않다. 그 아쉬움은 아오모리 서부 히로사키 공원 곁의 ‘쓰가루번 네부타무라’에서 달랠 수 있다. 네부타의 원형과 전통 공예를 연중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300년 전 히로사키번의 쌀 창고로 쓰였던 이 공간에 들어서면, 높이 9m가 넘는 거대한 네부타가 어둑한 천장 아래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부채꼴 표면에 그려진 인물들은 어둠을 뚫고 쏟아질 듯 맹렬한 눈빛을 번뜩인다. 종이 표면에 얹힌 굵은 붓선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듯 역동적이다. 등을 돌아 반대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전통 복장을 한 여인의 온화한 미소가 앞면의 험상궂은 무사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관람의 묘미를 더한다.
이 압도적인 조형물들의 끝은 놀랍게도 ‘소멸’이다. 해마다 축제 거리를 수놓는 네부타는 축제가 끝나면 골조는 해체되며, 종이는 의례적으로 태운다. 다음 축제를 위해 매년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부타는 그해에만 만날 수 있는 ‘일회성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없애기엔 아깝지 않으냐’는 물음에 현지 안내자는 “네부타 축제가 한 해의 액운과 잠, 질병을 등에 실어 멀리 떠나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해체해 털어버리는 것까지가 네부타의 완성”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네부타 축제의 뜨거운 호흡을 연중 체감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오모리야 바이 호시노 리조트’에서는 밤이 깊어지면 숙소 전체가 축제의 숨결로 들썩인다. 밤 9시, 전용 공연장 ‘미치노쿠 마츠리야’에서는 잔잔한 그림자 연극으로 시작해 심장을 울리는 대북 소리와 함께 네부타가 무대 중앙으로 당당히 전진한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지역민들의 응축된 생명력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쏟아지는 순간이다.
400톤 목조 성채를 들어 옮기다
네부타무라 인근에는 도시의 심장부인 히로사키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중심에 에도 시대의 원형을 품은 히로사키성 천수각이 서 있는데, 이 건물은 히로사키가 칼을 차던 무사들의 기풍 위에 세워진 도시임을 웅변하는 상징이다. 일본 전역을 통틀어 메이지 유신과 2차 세계대전의 화마를 피해 본래 목조 구조를 보존하고 있는 천수각은 12곳에 불과하며, 히로사키성은 그중 일본 최북단에 자리한 유산이다.
성은 1611년 축조 당시 5층 규모의 위용을 자랑했으나 낙뢰로 불타 소실된 후 1810년 3층 구조로 다시 세워졌다. 지붕은 얇은 나무 판재 위에 동판(구리)을 덧대어 올렸다. 수백 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내려앉은 은은한 청록빛 기운이 운치를 더한다. 겨울철에 2~3m씩 쏟아져 내리는 폭설의 하중을 견뎌내기 위한 북국 특유의 건축적 지혜다.
현재 히로사키성 천수각은 웅장한 석축 위가 아닌, 평지에 내려와 있다. 성을 받치던 돌담이 오랜 세월 눈이 얼고 녹는 동결 융해 현상이 반복되며 배가 부르고 기울어져 붕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히로사키시는 성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2015년 가을, 성채를 해체하지 않고 통째로 들어 옮기는 공사를 단행했다. 400톤(t)에 달하는 3층 목조 성채를 수십 대의 유압잭으로 띄운 뒤, 레일 위에 얹어 광장 쪽으로 70여 미터를 밀어 이동시킨 것이다. 훼손된 돌담을 바로잡고 내진 기초를 보강한 뒤 천수각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복귀 작업은 올해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단단한 석축을 벗어나 평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성채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만큼 직접 보면 상당히 어색하다. 높다란 기단이 사라지자 위엄 대신 소박한 목조 가옥의 맨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석축의 묵직한 볼륨감이 성곽 건축의 장엄미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다.
성을 빠져나오면 고요한 사색의 공간 후지타 기념정원이 발길을 붙잡는다. 일본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지낸 히로사키 출신 실업가 후지타 겐이치가 1919년 착공해 1921년 완공한 대저택과 정원이다. 총면적은 약 2만1800㎡에 달하는데 개인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하다. 근대 서양식 주택과 전통 일본식 주택, 차경과 회유식 정원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1991년 7월 히로사키시의 공공 정원으로 바뀐 뒤부터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정원 입구 옆에는 2층 구조의 서양관이 있다. 이곳 1층에 있는 ‘다이쇼 로만 카페’는 100년 전의 낭만을 간직한 채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앤티크한 벽난로와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푸른 정원을 조망하는 선룸 테라스는 다이쇼 시대 특유의 공기를 품고 있다. 이곳에서는 히로사키 특산 사과의 과즙과 큼직하게 썬 과육을 뭉근하게 졸여낸 사과 카레를 비롯해 갓 구워낸 애플파이를 맛볼 수 있다. 묵직한 세월을 머금은 찻잔 너머로 문화행사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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