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16만 976명 동원…누적 274만 5841명
정지영·이명세 등 영화인 20여 명 기자회견
12일 영진위 국감·가처분 검토…논란은 계속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역사 왜곡 논란의 한복판에 선 영화 ‘암살자(들)’이 한글날 연휴 첫날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누적 관객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뒀다.
1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한글날인 9일 하루 16만 976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 수는 274만 5841명이다. 300만 명까지는 약 25만 4000명이 남았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어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사건의 배후를 쫓는 형사와 기자들의 이야기로 배우 유해진 박해일이 출연한다.
당시 수사당국은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으나, 영화는 배후를 특정하지 않은 채 끝난다. 일부 장면과 대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중앙정보부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역사 왜곡’ 비판이 불거졌다.
정치권이 먼저 움직였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할 수 없는 역사 왜곡”이라며 제작진의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공세라고 맞섰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허 감독과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사건은 서울 종로경찰서가 맡았다.
제작진은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내고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들끓는 논란에 제작진은 무대인사와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지난 4일에는 보수 단체가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유해진이 광고 모델인 기업을 겨냥한 불매 운동도 예고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튿날 경찰에 배우와 영화 관계자의 안전 조치를 요청했다. 네이버는 이 영화 관람평에서 기계적인 조작 정황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나라 밖 영화제도 논란에 휘말렸다. 국민의힘은 6일 소속 의원 109명 전원의 이름으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서한을 보냈다.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거둬 달라는 내용이다. 영화제는 하루 뒤 “제작진의 창작적 비전을 존중한다”며 예정대로 상영하겠다고 답했다. 영화제는 오는 21일 개막한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암살자(들)’은 공방의 대상이었다. 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허 감독과 제작사 대표를 증인·참고인으로 부르자고 요구했다. 이재정 위원장은 영화 내용을 따지려고 창작자를 국회에 부를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장관도 “상상력과 창작에는 제약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한창 열리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나왔다. 정지영·이명세 감독 등 영화인 20여 명은 8일 오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촉구했다. 특히 정지영 감독은 이 자리에서 영화가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역사가 남긴 수수께끼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예술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영화제를 찾은 다른 영화인들도 생각을 보탰다.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은 7일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역사적 진실에도 논쟁이 있을 수 있고, 그 점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짚었다. 심사위원인 정주리 감독은 “많이 위축되는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정작 부산국제영화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영화제는 ‘암살자(들)’ 행사가 취소됐다는 공지만 냈다. 논란 자체에 대한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6일 개막작 기자회견에서는 김종관 감독에게 이 논란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개막작에 집중하는 자리라며 양해를 구했고, 김 감독의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일엔 영화진흥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300만 명 돌파 시점은 이번 주말 ‘치이카와’와의 경쟁에 달렸다. 2위에 오른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15만 2104명이 봤다. 1위와의 차이는 8872명에 그쳤다. 이 영화는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3위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6만 8740명), 4위는 ‘오디세이’(3만 7332명), 5위는 ‘부활남: 더 레드’(2만 209명)였다.
주말 순위는 장담하기 어렵다. 10일 오전 8시 기준 예매량은 ‘치이카와’가 10만 2779장으로 가장 많다. ‘암살자(들)’은 6만 559장이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