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청구권 신탁 첫 지급 사례
사회초년생 자녀 등 수익자 지정
1~3억원 비중 절반 4050세대 중심
집행보수 1%·운용보수 연 0.3% 수수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보험료는 약 515만원(2025년·보험개발원). 매달 성실하게 내는 돈을 더 값지게 쓰기 위해. ‘이’왕 낸 ‘보’험료를 ‘소’중한 우리 인생에 [이보소]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둘째 딸 김선희(25·가명) 씨는 지난 1월 어머니를 갑작스레 떠나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던 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생명보험에 가입해 놨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언니와 함께 보험사를 찾았더니 어머니의 종신보험금은 5000만원이었다. 그런데 보험사 신탁부에서 어머니가 별도로 1억4000만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보험금청구권 신탁’이라는 상품으로 둘째 딸인 본인에게만 남겼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어떤 의도에서 생전 이런 준비를 하셨을까.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지난 2024년 11월 도입된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첫 지급 사례가 등장했다.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재산의 관리·처분을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맡기는 신탁 제도가 사망보험금에까지 적용되면서, 상속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생명에서만 누적 계약 금액이 1년 3개월 만에 1038억원에서 5007억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났을 만큼 시장 반응도 뜨겁다. 특히 첫 지급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망 이후 실제 작동 메커니즘과 비용 구조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어떤 제도인가요?
쉽게 말하면 보험에 ‘사용 설명서’를 붙이는 장치입니다. 보험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지급되는 사망보험금을 신탁회사가 대신 받아 관리하면서, 가입자가 생전에 정해둔 방식대로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나 사회초년생, 장애 자녀 등에게 안전한 ‘경제적 보호막’을 두텁게 둘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 신탁이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같은 자산을 맡겨 운용하거나 상속·증여 수단으로 쓰는 구조라면,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만을 신탁회사에 맡깁니다. 보험금 자체가 아니라 ‘이 돈을 누가, 언제, 어떻게 받아 쓸 것인지’를 설계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가입자라면 별도의 자산 이전 절차 없이 비교적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차이입니다.
이전까지는 보험 계약자가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이 상속인이나 수익자에게 일시금으로 지급되기만 했습니다. 고인이 남겨질 가족의 사정에 맞춰 지급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고, 자산 관리가 익숙하지 않은 수익자에게는 갑작스러운 거액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가계 자산을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난 2024년 11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망보험금도 신탁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유족의 생활 보호 수단으로 활용돼 온 제도로, 국내에서도 단순한 자산 이전을 넘어 부모가 떠난 뒤에도 경제적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미리 설계해 두는 안전장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망 뒤 어떤 절차가 있었던 걸까요?
선희 씨가 받은 첫 지급은 2024년 11월 보험금청구권 신탁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 나온 지급 사례입니다. 절차를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1월 3일 어머니가 별세하셨고, 같은 달 30일 유족이 보험사 플라자를 찾아 계약자 사망 신고를 하면서 자동으로 신탁부에 연계됐습니다. 일주일 뒤인 2월 6일에는 신탁부 직원이 수익자인 선희 씨와 직접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생전에 남긴 유지를 전달하고, 보험금이 입금될 수익자 계좌를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13일 뒤인 2월 19일 첫 500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일반 사망보험금은 청구하면 곧장 일시금으로 지급되지만, 신탁이 설정된 보험금은 다릅니다. 신탁회사가 보험금 청구 권한을 갖고 있어 별도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신탁사는 유족이 보험사에 사망 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유족이 신탁 사실을 미리 몰랐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어머니는 왜 분할 지급으로 설계하셨을까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둘째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1억4000만원이라는 큰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자칫 관리가 어려울 수 있고, 주변에서 그 돈을 노리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현장 재무설계사(FP)를 통해 사망보험금도 신탁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둘째 딸의 인생 단계에 맞춰 자금이 풀리도록 직접 설계하셨습니다.
신탁계약서에는 지급 일정과 수익자 이름이 어머니 자필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별도의 영상편지나 유언서는 없었지만, 신탁 계약 자체가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그릇이 된 셈입니다. 신탁회사 측은 위탁자가 남기고 싶은 말을 신탁 계약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회초년생이나 미성년 자녀, 자립이 어려운 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망 후 1년 동안 1억4000만원은 어떻게 관리되나요?
삼성생명의 경우 사망보험금은 정기예금으로만 운용됩니다. 보험금이 신탁사에 입금되는 시점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율이 적용됩니다. 위탁자가 운용 방식을 따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사망보험금은 유족의 생활 안정과 직결되는 자금인 만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는 안정적 운용을 원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운용 기간 발생한 정기예금 이자는 수익자에게 귀속되며, 이자소득세 과세 대상입니다. 즉 선희 씨가 1년 뒤 받은 5000만원 안에는 그사이 발생한 이자분이 포함돼 있고, 그 이자에 대해서는 일반 예금과 동일한 세금 처리가 이뤄집니다.
신탁사에 맡기면 비용은 얼마나 들고, 상속세 부담은 줄어드나요?
비용은 두 갈래입니다. 신탁 집행 시 사망보험금의 1%를 집행보수로 차감합니다. 선희 씨 사례라면 1억4000만원의 1%, 즉 140만원이 일회성 비용입니다. 여기에 운용 기간 매년 0.3%의 운용보수가 붙습니다. 신탁사가 사망 이후 자금을 관리·지급하는 대가입니다.
다만 신탁을 활용한다고 해서 상속세가 줄어드는 효과는 없습니다. 사망보험금 1억4000만원 전액이 상속재산에 포함돼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됩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핵심 가치는 절세가 아니라 ‘지급 시점과 방식의 통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언제, 어떤 조건으로 보험금이 흘러갈지를 위탁자가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의 본질입니다.
분할 지급을 받는 도중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원칙적으로 위탁자(어머니)가 사망한 이후에는 신탁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정해둔 일정대로 보험금이 지급되며, 수익자가 임의로 일시금을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갑작스러운 큰돈으로 인한 낭비나 외부의 유혹으로부터 수익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다만 예외는 있습니다. 신탁계약서에 명시된 사유에만 일시 지급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수익자가 신탁재산이 아니면 기초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6개월 이상의 중병 치료가 필요한 경우,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가 확정돼 신탁재산에서 유류분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위탁자가 생전에 신탁을 설계할 때 어떤 상황을 예외로 둘지를 함께 정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1년 사이 보험금청구권 신탁 시장은 얼마나 커졌나요?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삼성생명에서만 보더라도 누적 계약 금액이 2024년 말 1038억원(259건)에서 지난해 말 3241억원(1114건)으로 뛰었고, 2026년 3월 17일에는 5007억원(1638건)을 돌파했습니다. 1년 3개월 만에 5배 가까이 불어난 셈입니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평균 계약 금액의 추이입니다. 지난해 5월 기준 평균 3억8000만원이던 계약 금액은 1년 만에 3억1000만원으로 낮아졌습니다. 자산가 중심으로 출발했던 시장이 4050세대를 중심으로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실제로 올해 누적 신규 계약에서 1억~3억원 구간이 48.4%로 절반에 가깝고, 1억원 미만 구간도 26.7%에 달합니다. 수익자는 자녀를 지정한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삼성생명 측은 “현장에서 실제 계약 사례가 알려지면서, 기존 종신보험뿐 아니라 새로 가입하는 사망보험에도 신탁을 결합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고려해 볼 만한 경우는 어떤 때인가요?
크게 네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 사회초년생이나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어 큰돈을 한꺼번에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희 씨 사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발달장애 등 자립이 어려운 자녀가 있는 가정입니다. 보험금이 자녀 본인의 삶을 지키는 데 안정적으로 쓰이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손자녀에게 단계적으로 자산을 이전하고 싶은 조부모입니다. 학자금이나 결혼 자금처럼 특정 시점에 맞춰 지급되도록 정할 수 있습니다. 넷째, 본인 사후 치매나 고령으로 자산 관리가 어려운 배우자가 남게 되는 경우에도 유용합니다.
가입 조건과 신탁사 선택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가입 조건은 명확합니다. 주계약 기준 일반 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이상이어야 하고, 보험계약자·피보험자·신탁계약자가 모두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하며, 수익자는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만 지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금융기관에서 취급하는 것은 아니므로, 신탁업 인가를 받은 보험사·은행·증권사를 통해 계약해야 합니다.
신탁사를 고를 때는 세 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첫째, 보험계약 구조와 지급 설계에 대한 전문성입니다. 가족 상황에 맞는 신탁 구조를 짜려면 보험과 신탁을 모두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재무적 안정성입니다. 수년에 걸쳐 보험금을 나눠 지급해야 하는 만큼 신탁사의 자산 건전성과 규모가 중요합니다. 셋째, 컨설팅 역량입니다. 가족 상황과 목적에 따라 지급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계약 전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곳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